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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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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ilsang Mar 21. 2020

열정 한 방울 제주

꽃들이 만개한 여름의 제주에서

두 눈 가득 자연을 담았다.

생명은 활기를 채웠고, 나는 열정을 태웠다.










낭만의 섬이요?




산책하듯 출근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30분 남짓의 출근길 대로변에는 꽃이 심어있었고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출근보다는 산책에 가까웠다. 콧노래를 부르며 도착한 호텔은 한옥 특유의 정취를 품으며 맞이해주었고 그 모습은 자연 그 자체였다. 잔디 광장을 지나 내려다본 바다는 출근길에 걸어오며 흘린 땀방울을 식혀주었고 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게 만들었다. 사색도 잠시, 7월의 제주도는 바빠도 너무 바빴다. 막 시작된 여름휴가로 성수기에 들어섰고, 밀려 들어오는 고객들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 최상의 룸 컨디션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그리고 신선하고 건강한 한 끼를 위해 자연스레 직원들의 휴가는 뒤로 밀렸다.

     

가장 처음으로 배운 업무는 호텔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었다. 객실 예약하는 방법, 잔여 객실 확인하는 방법, 투숙객 확인, 체크인, 체크아웃 등이 이에 해당했고 매일 아침 객실 팀장님께서 특별 훈련을 담당해주셨다. 프로그램을 익히는 동안 프런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투숙객을 맞이하는 상황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고객을 응대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낄 무렵,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객실 내에 비치된 미니바를 사용한 경우, 체크 아웃 시 프런트에서 한 번에 결재를 하게 되는데 1,500원을 덜 계산한 채로 고객을 보내드린 것이다. 체크아웃 후에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공항으로 가는 고객이 많았고 돌아와서 재결제를 요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실수를 알아차리고 안절부절 하기를 몇 분이 흘렀고 프런트 뒤편, 사무실에 계시는 팀장님께 찾아갔다. "팀장님, 제가 결재를 잘못했어요. 고객에게 돈을 덜 받았습니다." 무겁게 열어 올린 말에 팀장님은 조용히 프로그램을 확인하셨고 곧 침묵이 깨졌다.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휴... 다음부터는 주의해주세요."


크게 꾸중을 들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팀장님은 차분하고 담담하셨다. 주의해달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말도 없으셨고, 덕분에 나는 더 불안했다. '왜 별말씀이 없으시지?' 며칠 동안 함께하며 조금은 친해진 동료에게 물었고 이유는 간단했다. 종종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계산을 실수하는 경우가 있었고, 다년간 호텔에서 근무하신 팀장님께는 수많은 날 중에 하루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지치셨고, 때마다 직원을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작게는 몇 백 원이지만 크게는 몇만 원까지 되는 비용을 어린 직원에게 부담하게 할 수는 없었고 이런 사태를 대비하여 따로 분리해서 마감 업무를 하신 모양이다. 이후에도 우리는 돌아가며 아기자기한(?) 실수들을 저질렀고 그때마다 객실 팀장님은 조용히 다가와 문제점을 해결해주셨다.







노동의 섬이라 부르겠어요.




"끼익 끼익 이상한 소리가 나!! 무슨 5성 호텔이 이래!!!" 늦은 밤, 프런트로 고객이 찾아왔다. 친구들과 여행을 온 고객께서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었는데, 수압은 낮고 정체모를 소리만 들려온다는 것이다. 고객의 불편에 막내 직원은 바로 고객이 머무는 객실로 함께 출동했다. 화장실의 수전은 수도꼭지와 샤워기가 붙어 있었는데 이용을 할 때마다 가운데 손잡이를 용도에 맞게 돌려서 사용해야 했다. 손잡이가 제대로 돌아가 있지 않으면 맛물려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한쪽으로 흘러야 하는 물이 막히면서 샤워기와 수도꼭지 양쪽에서 줄줄줄 세듯이 수압이 약하게 흐르곤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객은 답답하셨을 것이다.


직원들에게는 고객을 응대하고 프로그램을 제대로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 업무가 바로 객실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객실 팀에서는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모든 객실을 돌아다니며 청결 상태를 점검하고 시설을 정비했다. TV 볼륨은 15로 맞추고 데스크 위 컵 덥게는 로고가 반듯하게 보이도록 하기, 실내화는 어른용 2켤레와 아이용 1켤레 세팅하기, 에어컨 온도는 18도로 맞춰놓기, 손전등 작동 여부 확인, 그리고 테라스와 야외 탕 안에 낙엽 정리하기 등 이외에도 몇 가지를 더 확인해야만 점검이 끝났다.



특히 내가 일했던 호텔은 제주 전통 '한옥'이라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춰서 객실의 디자인과 서비스가 구성되었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침구 추가였다. 보통의 호텔은 인원을 추가하게 되면 엑스트라 침대를 준비해 드리는데, 우리는 깔고 덮는 이불을 한 채씩 넣어드렸다. 두꺼운 솜이불 세트와 베개를 안아 들고 돌길을 걸으며 객실까지 옮겨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층층이 쌓아 올린 이불더미는 시아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서 앞을 확인하며 걸어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고충은 더했고 혹시라도 이불이 젖지 않을까 두꺼운 헝겊으로 덮고, 그 위에 비닐을 한 번 더 두른 후에야 침구를 무사히 옮겨 놓을 수 있었다.



비 온 뒤 돌 길은 유난히 미끄러웠고 장마철이면 무릎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체크인을 하면 객실까지 고객을 안내해드리고 짐을 옮겨드리는데, 갑자기 발목이 마음대로 움직인다. 미끄러운 풀을 밝고 돌 계단위에 넘어지고 말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어깨를 감싸 쥐었고 짧은 순간에 분명히 어디 한 곳 부러진 상상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아픈 곳이 없지?' 엉덩이가 푹신하다. 눈을 떠 확인해보니 분명 나는 바닥에 앉아 있는데... 아뿔싸 고객의 패브릭 캐리어를 깔고 앉아버렸다.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서 고객에게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사과의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다. 가족여행으로 호텔을 방문해주셨던 고객께서는 딸아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직원의 실수를 그저 괜찮다고 오히려 다친 데는 없냐며 걱정을 해주셨다.













- 2019년 7월~9월까지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 이후의 호텔 운영은 글에 게재된 것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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