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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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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ilsang Mar 30. 2020

눈물 한 방울 제주

햇볕이 내리쬐는 은빛 물결,

귓가에 맴도는 파도 소리까지,

모든게 완벽했다.










제주 바다는 눈이 부셨고,




객실 팀 업무가 조금씩 손에 익어가기 시작할 즘부터 메이드 이모님을 도와 객실 청소를 배우기 시작했다. 온전히 내 힘으로 객실을 청소할 수는 없었지만 이불 커버를 분리하거나 베개커버를 바꾸는 일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모님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졸졸 쫓아다녔다. 두 겹으로 돌돌 말린 베개커버를 벗기고 다섯 개의 리본으로 총총히 묶인 이불의 끝을 풀어서 뒤집으면 이불솜과 커버가 분리된다. 수거한 커버는 분리해서 메이드 실에 가져다 놓으면 세탁 업체에서 가지고 가는 방식이었고, 솜을 뺀 이불 커버쯤은 한 손으로 들기에도 거뜬했다. 그래서 보통 2~3 객실의 커버를 모아서 한 번에 가져다 놓곤 했다. 이불을 가져다 놓고 오면 이모님은 걸레를 빨아서 내 손에 쥐어주셨고 책상과 테이블을 닦았다. 마대를 이용해서 바닥까지 닦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이 났다.

 


새하얀 객실의 침구류가 모두 새빨간 침구로 바뀌는 날이 있는데, 중국과 한국 커플의 국제 결혼식이 있어서 기존의 하얀 이불 커버 위에 덧씌워 준비해 놓은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투숙객이 모두 퇴실한 후 망설임 없이 빨간 이불 커버를 분리하고 그 안에 호텔의 새하얀 이불 커버를 정리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메이드 실의 세탁 통에 넣어놓았다. 그런데 이모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신혼부부가 머물었던 객실 침구류 어디에 있어?", "아무리 찾아도 없네?”, “진영씨가 아까 왔었어.” 이모님들이 찾는다는 말에 부랴부랴 메이드 실로 뛰어갔다.


"신혼부부가 쓰던 객실 침구류 어디에 뒀어?"

“아! 그거 제가 메이드실 세탁 통에 넣어뒀어요!”

“그걸 왜 거기다 넣어?"

“네?”

"만져보면 촉감이 다르잖아!”     


다 같아 보이는 침구류라도 객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객실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운영되었는데, 하나는 제주 전통 '한옥'의 객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편리성을 더한 양실 타입의 객실이었다. 한옥 객실은 대부분 고급 스위트룸에 속했고, 양실 타입의 객실은 디럭스룸과 일반 스위트룸의 비중이 높았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침구류에 차이가 있었고 세탁법도 달랐던 것이다. 알턱이 없던 나는 양실 타입의 객실 이불 커버를 놓는 곳에 한옥 객실의 침구류를 넣어 놓은 것이다. 이미 세탁업체에서 커버를 모두 수거해 간 후였고 나는 이모님들의 뭇매를 맞으며 눈총을 사야 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한옥 객실의 출입문과 창문은 모두 창호로 만들어졌는데, 그 창호 사이사이 작은 네모 칸을 모두 물걸레질로 닦고 있으면 귓가에 파도 소리가 얄궂게 들려왔다. 특히 한옥 객실은 대부분 바로 앞에 중문 해수욕장이 있어서 고개만 돌리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여름휴가를 보내러 온 사람들로 바다는 점령당해있었다. 고개를 돌려 잠시 바다를 감상하길 여러 번, 이내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다닥 청소하기에 전념했다. 제주도에 내려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이다. 무더운 여름 바로 앞에 보이는 시원한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기란 쉽지 않았고 작은 창호지를 하나하나 닦는 것은 굉장히 지루하고 또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눈이 몰리는 기분도 살짝 들었다. 왜 이런 업무를 시켰을까 툴툴거리길 몇 번, 알고 보니 한옥 객실 청소 중 창호지 닦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 한다. 이모가 쉬운 업무를 준 것이다.

 


제주도를 오기 전에 제주도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중 제주도는 향촌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외부 사람은 배척한다거나 친해지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메이드 이모의 거친 말을 들을 때면 ‘혹시...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방언이 섞인  한마디 한마디눈물 흘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표현만 거칠 뿐 사실 서울에서 온 아가씨를 배려해주고 계시다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다.













- 2019년 7월~9월까지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 이후의 호텔 운영은 글에 게재된 것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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