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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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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ilsang Apr 07. 2020

구슬땀 맺힌 제주

생각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날들을 지내고 있다.










푸른 여름의 끝자락, 입안에서 감도는 달달함



     

본업은 마케팅팀의 홍보 담당자였다. 제주도에 내려갔을 무렵 호텔에서는 여름 한정 메뉴와 신메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뎅유지 에이드'는 매년 여름 호텔의 시그니쳐 메뉴였다. 이 달달 하고 상큼한 맛과 청량함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 만들어낸 문구 한 줄과 사진 한 장을 골라서 드디어 게시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글을 쓰고 호텔의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틈틈이 새로운 메뉴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한달음에 레스토랑까지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갔다. 검은 대리석 테이블에 음식을 세팅하고 셔터를 누르길 몇 번, 마음에 들지 않아 야외로 나가서 햇볕 아래 신메뉴 세트를 한 상 가득 차려 올렸다. 1시간 남짓을 요리조리 찍은 후에야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로 들어갔다. 객실 팀의 바쁜 업무가 끝나고, 드디어 내 일을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늘 하루 동안 보고, 듣고, 보관해둔 사진들을 찾아보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파 이용 후기, 아코디언 연주회 준비, 제주 바다를 위한 업무 협약 등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담았다.


포토샵을 다룰 줄 몰라서 밤새워 PPT로 만들어낸 홍보물은 늘 만족스럽지 못했고, 리플릿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시안은 수십 번의 수정을 거치고 나서야 디자인 회사로 보낼 수 있었다. 사장님께 불려 가길 몇 번, 디자인 담당자님과 통화하기를 몇 번, 그렇게 몇 주가 흐른 후에야 완성된 리플릿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당장에 컴퓨터 학원을 등록해서 디자인부터 배우리라는 결심을 한 것이 아마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추석을 맞이한 호텔은 긴 연휴 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여행 온 투숙객으로 가득했다. 명절에는 특별히 한복을 입고 고객을 맞이했는데 나는 투숙객과 함께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허리에 휴대용 마이크를 차고, 객실 팀, 식음 팀의 도움을 받아 잔디 광장으로 고객을 끌어모았다. 한 분, 한 분 제기차기를 하고, 가장 많이 찬 분이 상품을 가지고 가는 서바이벌 방식이었는데 상품은 호텔 바우처, 식음료 바우처, 그리고 화장품 선물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별미는 직원 식당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온몸에 땀을 흠뻑 쏟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주어진 식사시간은 12시에서 1시 사이였고, 호텔의 직원들은 각 업장에 최소인원을 남겨두고 식사를 하러 왔다. 식사 준비는 호텔의 조리팀에서 해주었고 덕분에 직원들의 식사는 영양과 맛을 고루 갖춘 건강하고 특별한 한 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직원이 건강하고, 잘 챙겨 먹어야 좋은 서비스로 고객을 맞이할 수 있다는 주방장님의 신념 덕분에 복날에는 전복이 든 삼계탕을 먹고, 초계 국수와 한치회, 그리고 채소보다 회가 더 많이 든 물회까지 매일매일 점심 메뉴를 생각하며 출근했다고 하기에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해물 짬뽕에는 새우와 오징어를 비롯해 신선한 해삼물들이 가득 들어가 더욱 푸짐하고 깊은 맛을 냈다. 정신없이 짬뽕을 먹다 보면 항상 블라우스에 빨간 국물 자국을 묻히기 일수였는데, 하루는 객실 팀 직원을 따라서 티슈를 뽑아 들어 목에 걸쳐 턱받침을 만들어 놓고 짬뽕을 먹었다. 하지만 턱받침 부위를 쏙~ 빼고 국물이 튀어있어서 후다닥 닦아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간식으로 준비된 식혜와 수정과 그리고 미숫가루, 아이스크림까지 모든 메뉴는 집 나가 고생이라고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느냐는 부모님의 걱정에도, 오히려 더 잘 챙겨 먹고 다닌다며 안심시켜 드리기에 충분했다. 쉬는 날이면 호텔의 직원 식당이 생각날 정도였고 쉬는 날에도 호텔에 와서 밥 먹고 가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쉬는 날엔 오후까지 늦잠을 자고 제주도 살이의 재미난 하루를 보내야 했기에 맛볼 수 없었다. 주방장님은 종종 타지에서 온 직원을 위해 김장김치를 나눠주신다거나, 맛있는 밑반찬을 챙겨주셨다고 한다.


호텔에서 내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제주도에서 일을 했던 3개월은 너무 힘들고 지치는 시간이었지만 직원들 간에 서로 보여준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 2019년 7월~9월까지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 이후의 호텔 운영은 글에 게재된 것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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