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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남이 Nov 18. 2020

제주 숙소 이야기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들

두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는 아침 조식. 갓 구운 빵과 커피가 제공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걸로도 충분하다. 조식을 주는 숙소를 애정 하는 편인데 요즘 조식을 주는 숙소가 많지 않으니까.  


저녁 7시 즈음 숙소에 도착했다. 반 일층의 높이에 카페가 있고 그 위층이 숙소다. 카페 담벼락에는 이제는 뭔가 옛날 감성이 된 것 같은 올드카 번호판 따위가 질서 있게 붙어있었다. 머리가 짧은 여자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하며 주차를 도와주셨고, 모자를 쓴 남자 사장님은 우리의 짐을 기꺼이 들어주셨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반겨주는 마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늦은 체크인이라 친구와 나는 얼른 짐만 내려놓고 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웰컴 티를 주신단다. '음.. 괜찮은데...' 하면서도 일단 또 마음을 받기로 한다. 여자 사장님은 종이로 인쇄된 지도를 가지고 와서 숙소의 위치와 주차할 공간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신다. 집 주변의 맛집도 지도 위에 번호로 표시되어 있다. 이 인쇄된 지도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 옛날 스마트폰 없던 시절 유럽여행할 때 한인 민박집에 가면 캡처한 지도를 보드에 붙여놓고 설명을 해주곤 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지도에는 편의점 표시도 따로 되어 있고 오는 길도 한국어/영어 두 버전으로 설명이 되어 있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사진을 찍고 종이는 두고 나왔을 텐데 이 아날로그 귀염 뽀짝 지도를 도저히 두고 올 수 없어 잘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음식점을 두고 사장님 추천 횟집으로 향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고성이 오가는 시끌벅적함이 있는 동네 횟집이다. 모둠회를 시켰는데 고등어회와 갈치회가 서비스로 나온다. '요놈들. 회 맛 좀 봐라'하는 느낌이다. 횟집에 가면 의례 나오는 수만 가지 반찬 같은 거 안 준다. 그냥 '회나 먹어'하는 느낌. 회에 진심인 이곳. 분위기, 맛, 가격 모두 대만족이다.


회 맛에 제대로 반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이 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 감성 숙소에서는 자주 빠뜨리는 배드 러너가 두 개의 침대에 각각 아주 반듯하게 올라가 있다. 덮는 이불은 침대에 단단하게 고정이 되어 있어서 힘껏 잡아당겨야 한다. 두 침대를 연결하고 있는 선반 겸 장식대에는 하와이 풍의 장식품이 적당한 위치에서 여행 분위기를 내어주고 있고 화장 거울과 각 티슈가 쓰임새 적절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며, 무드등과 제주 여행 책이 침대에서 손을 뻗으면 딱 닿을 자리에 놓여있다.

화장실의 수건은 아주 단단하게 돌돌 매여 있어 내가 처음 쓰는 사람임을 자각하게 해 준다. 냉장고에 물병 두 개 덜렁 들어있어도 되련만 작은 나무와 코끼리로 장식해 놓은 정수기가 놓여있고 정수기 옆엔 컵과 유기농 티백도 놓여 있다. 에어비엔비와 호텔을 적절히 섞어놓은 느낌이랄까. 어쩐지 자꾸 옛날 옛날의 아날로그 느낌이 나고 그랬다.


이 집의 킬링 포인트인 조식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침에 일어나 1층 카페로 내려오면 사장님 두 분이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인사와 함께 음료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는다. 그러면 곧 테이블 매트가 깔리는데 이 테이블 매트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 말하는 북유럽의 무채색 심플 스타일이 아니라 옛날 옛날 조금 잘 사는 친구들 집에 가면 소풍 도시락을 꼭 이런 무니의 손수건에 싸왔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알록달록 귀여운 페이퍼가 매일 다른 무늬로 준비된다. 여기에 사이드로 수프가 나오기도 하고 요구르트가 나오기도 하고 반숙 달걀이 나오기도 하는데 (달걀은 돼지 모자도 쓰고 나온다. 달걀도 진심..!) 뭐니 뭐니 해도 메인은 아침마다 굽는 갓 나온 빵이다. 매일 다른 빵이 짝꿍 잼과 함께 나온다. 또 각종 스푼과 나이프도 용도에 맞게 모두 준비된다. 이 조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 옛날 유럽여행을 다닐 때 바쁘게 아침부터 서두르는 한국 친구들과는 달리 호스텔 공동 식당에 여유 있게 앉아 토스트 빵에 잼을 듬뿍 둘러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던 외쿡 친구들이 생각나게 하는 그런 조식이다.


아마 내가 눈치채지 못한 디테일이 더 많으리라. 이런 디테일에서 사장님이 생각하는 여행이 묻어나는 것이리라. 만일 숙박업의 본질이 여행자가 숙소에서 편히 머물고 좋은 기억을 안고 돌아가는 것이라면 사장님 내외분은 자기 직업과 여행자에게 분명 진심인 사람일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 마음이 고맙고도 부러웠다.


여행에 진심인 사장님의 마음은 카페 곳곳에 드러난다. 카페의 한쪽 벽은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여느 여행지 카페처럼 여행 책이 대부분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행책 말고 아트북이 참 많다. 유명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귀한 책들이 꽂혀 있는데 여행지에서 사 온 책이라고 한다. 책의 언어나 주제가 정말 다양하다. 오름에 꽂혀서 제주에 내려와 오름의 생태계를 보전하는 활동도 하신다고 했는데 이렇게 자신의 일에 진심인 사람을 만나고 있으니 내가 여행을 와 있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여행에 진심인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북카페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잘은 몰라도 이 북카페 사장님도 북카페에 진심인 것 같다. 책 읽는 사람에 방해되지 않게 아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주문을 받으신다. 늦게 와 불편한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는 자리가 나는 대로 편한 자리로 옮겨 주신다. 아니 제주에는 왜 이리 진심인 사람이 많은 거야. 나는 무엇에 진심이지?




진심인 사장님의 숙소는 - 비아제주스테이

https://abnb.me/Bt3bHDByvbb


플러스,

사장님 추천 맛에 진심인 곳 1 - 모살물

회에 진심인 곳.


사장님 추천 맛에 진심인 곳 2 - 두루두루 식당

조림에 진심인 곳. 밥을 아껴 드시라. 마지막에 양념에 꼭 비벼먹어야 하니까 ...!


사장님 추천 맛에 진심인 곳 3 - 무정식당

해장국에 진심인 곳. 점심 시간이 살짝 지난 후에 가시라. 식사 시간이 지난 손님이 배고플까 고기를 더 듬뿍 넣어주시니까 ...!


사장님 추천 북카페 - 유람위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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