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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Jul 21. 2021

캐롯시장의 이상한 사람들(2)

동네 중고 거래의 단상


캐롯시장의 이상한 사람들(1)

https://brunch.co.kr/@richlemon/49



두세 번 착용하고 입지 않게 된 골프 티셔츠가 있어 캐롯시장에 만원으로 올렸다. 어떤 분에게 문의가 왔는데 가격을 깎아달라 하길래 선뜻 천 원 빼 드리겠다 했다. 그분은 가격 흥정을 하고도 연거푸 옷 상태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좀 까다로운 분인 것 같았다. 만 원짜리 옷을 구입하면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듯했다. 만원이 대수롭지 않은 작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부담이 가는 큰돈이 아니기도 한 것을......



옷을 내놓으며 상태가 괜찮지만 분명 몇 회 착용했다고 적었는데, 그분은 새 옷을 바라는 듯한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듯하여 새 옷을 원하시는 거라면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분 입장에서 궁금한 점들은 확인이 된 것인지, 괜찮다며 구매를 하겠다고 한다. 처음 얘기한 대로 9천 원에 거래가 진행되었다. 문고리 캐롯이 이뤄진 후에 예쁜 옷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감사하다는 후기가 올라왔다. 알고 보니 신중한 분이었는데 내가 너무 선입견을 가졌나 잠깐 생각했다.



생각하지 못했던 연락이 다시 온 것은 몇 시간이 지난 그날 오후였다. 티셔츠 앞쪽에 올이 나간 부분이 있는데, 그냥 입을 수 없겠다고 한다.



옷을 정리할 때 올이 살짝 풀린 부분을 보기는 했는데 내 기준에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는 정도였다. 그 정도면 가격에 반영한 셈이라고 가볍게 넘겼던 것이 화근이었다. 내 눈에는 괜찮았지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른 것이고, 이런 게 있다고 미리 상세하게 알리지 못한 책임이 분명히 있으니 그걸로 논쟁하며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냐고 먼저 물었다. 빨래를 하려고 했는데, 올이 풀린 부분 때문에 빨래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정도는 손빨래로 세탁 조심히 하면서 입으셔도 된다고 답했지만 그분은 막무가내였다.






한 번만 빨아 입어도 올이 다 나갈 것 같다고 계속 ㅜㅜㅜ와 물결 모양 ~~~를 챗으로 보내신다. '짜깁기가 요즘 얼마쯤 하나요~~ 짜깁기... 하지 않으면~~~ 옷을 입을 수 없어요~~~~ㅠㅠ' 이런 챗을 연이어 받고 보는 것은 막상 겪어보니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제가 정확하게 알리지 못해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환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챗을 보냈다. 뜻밖에도 그분은 '옷은 너무 잘 맞고 예뻐요~~~ 짜깁기가 필요합니다~~~~ ㅜㅜㅜ'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나야말로 ㅠㅠㅠ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물건에 불편한 점이 있는데 환불은 왜 싫다는 것일까? 하고 의아하던 와중에 다음 챗으로 의문이 풀렸다. '짜깁기 비용을 지원해 주시면 어떨까요? 이 옷은 짜깁기해서 입어야 할 것 같아요~~~'라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 파파팍 전류가 돌아가며 갖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분은 옷이 마음에 들어 환불하고 싶지 않고, 그저 수선비를 받아내 티셔츠를 더 저렴하게 갖고 싶다는 의지가 충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이 나갈까 봐 불안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입으면 그만인데, 왜 환불은 거부하고 수선 비용을 달라는 것인가. 나는 세탁소나 수선집에서 하는 짜깁기 수선을 해보지 않아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지만, 수선비는 최소 5천 원에서 만원 이상 들지 않을까?



올봄에 사서 두세 번 입은 5만 원 상당의 티셔츠를 중고니까 1만 원, 아니 9천 원에 팔았다. 티셔츠를 돈을 들여 수선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내가 5천 원을 지원하면 티셔츠의 가치는 고작 4천 원이 되는 것이고, 만원을 지원하면 오히려 천 원을 주고 캐롯셈이다. 얇은 티셔츠 한 벌이 돈을 주고 버려야 하는 덩치 큰 재활용 제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평소의 나 같았으면 언쟁이 싫어 '네, 얼마를 보내 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었을 수 있는데, 뭔가 오기가 생겨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1만 원이 적절한 가치라고 생각해 기분 좋게 거래하려던 계획이 무너진 것에 대한 상심과, 한 때 내 소유였던 티셔츠의 가치를 적게는 4천원, 크게는 마이너스로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단돈 만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 사람을 상대하느라 보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이번에 물러나면 이분은 늘 이런 자세로 캐롯시장에 있겠구나, 싶은 쓸데없는 오지랖과 공명심도 약간 발동했던 것 같다. 환불을 하면 나에게도 전혀 이익이 없지만(다시 그 옷을 팔고 싶지 않을테니), 그렇다고 수선비를 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환불이 싫으시다니 저도 더 도와드리긴 어려울 듯합니다. 얼마일지 모르는 짜깁기 비용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짜깁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ㅜㅜㅜㅜ'와 같은 챗이 다시 왔고 나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알림이 오면 혹시 그분이 아닌지 싶어 몇 시간 동안 몹시 신경이 쓰였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후 연락은 없다. 직접 수선을 맡겨서 입고 있을지는 물론 전혀 궁금하지 않다.



지역에서 캐롯하기 좀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짜깁기~~~~~' 타령이 엄청난 큰 일도 아니니,  어느새 곧 잊혔다. 그러다가 짜깁기 사건이 다시 떠오른 것은 그보다 더한 사람과 말, 아니 채팅을 섞게(?) 되서이다.



To be continued......



https://brunch.co.kr/@richlemo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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