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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Jun 13. 2021

마이너리티, 소수의 의견

한강 의대생 사망과 모 은행 불륜 사건을 지켜보며


회사원인 나의 스마트폰에도 '블라인드'라는 직장인 타겟의 익명 어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다. 블라인드에는 여러 종류의 게시판이 있어서,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회사 얘기(아무래도 주로 욕...)를 하기도 하고, 동종 업계 사람들 간에 정보를 교류하기도 하며, 더 큰 분류의 게시판이 있어서 사적인 얘기를 올려 상담을 하기도 하도, 셀소(셀프 소개)나 미팅이 이뤄지기도 한다.



종종 블라인드에 들어가 이런저런 내용을 살펴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무 영역에서의 개인적인 의견은 절대 익명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아직 게시글이나 댓글은 물론, '좋아요' 한 번 눌러보지 않은 pure 한(?) 계정이다.








며칠 전 우연히 블라인드에 들어갔다가 그야말로 '난리가 난' 사건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 은행의 여성 행원이 결혼식 직전, 같은 직장의 남성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이 예비 신랑에게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건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예비 신랑이 그간 있었던 두 사람의 채팅 기록을 캡처하여 예비 신부의 스마트폰으로 예비 신부의 지인들에게(몇십 명으로 추정되는 듯) 몽땅 송부했다는 것. 임박한 결혼이 취소되었음은 물론이다.



블라인드에서의 일반적인 반응은, 빡친(...) 예비 신랑의 마음에 공감하며 너무나도 통쾌하고 후련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불륜 또한 학교 폭력과 마찬가지로 널리 소문이 나서 크게 망신을 당하고 곤욕을 치러야 마땅하다는 것이 중론인 듯했다.






요즘 나는 갈수록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 '대세'로 불릴만한 여론과,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크게 다를 때가 많아서이다. 이 거리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앞으로 큰 과제가 될 것 같다.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실족사일 가능성이 99%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술로 인한 사망 사고가 제법 많다. 이를테면 어지간한 대학교에는 최소 한두 개의 호수나 연못이 있고, 술을 이기지 못해 그리 깊지 않은 물에서 안타깝게 인생을 마감한 사례가 전해져 온다.



단 하나 의아했던 점은 새벽에 귀가한 친구가 부모님을 동반하고 한강을 다시 찾은 것인데, 그 이유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society' 속 암묵적인 사교 방식, 이라는 이유로 나중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 차례 만날 정도로 가까운 '의대생 학부모 모임'에서 체면과 예의가 중요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녀가 대학에 갔는데, 그 부모들이 따로 모임을 갖는 것이 흔한 사례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만 그에 대한 통계는 없다.) 만취해서 돌아온 아들이 친구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니 친분이 있는 친구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가봐야 했던 것이 그들 사이의 매너였을 것이다.



설사 아니라고 해도 실족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친구에게 엄청난 해를 끼칠 만한 특별한 이유도, 공개된 장소에서 학교 점퍼를 입고 돌아다닐 이유도, 무엇보다 아무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블라인드에서 알게 된 은행 사건으로 돌아가면, 역시 내 의견은 중론과 다르다. 불륜은 가정을 파괴하는 나쁜 행동임은 분명하지만, 최소한 불법은 아니다. 간통죄는 이미 폐지된 지 오래이며,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법적으로 처벌받을 사유는 되지 못한다.



하루아침에 신상과 사생활이 타인에 의해 까발려진 예비 신부의 경우 미혼이었다. 상대였던 같은 회사 상사 팀장의 경우, 나이가 훨씬 많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가 유부남인지 돌싱인지 미혼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유부남일 경우에 '불륜'이 성립되는데, 위에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법적 처벌 사유는 되지 않는다.



예비 신랑이 느꼈을 엄청난 당혹감과 배신감은 역지사지로 볼 때 쉽게 상상이 가지만, 그렇다고 예비 신부의 지인들에게 직접 그녀의 사생활을 유포할 권리는 없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으니 결혼을 깨고 합당한 보상을 요구해서 받으면 될 것을...... 그냥 생각해 봐도 명예 훼손은 물론, 정보통신 위반법에 해당되기에 형사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라 보인다.



이 사건에서 법을 어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쉽게 결론이 난다. 법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조용히 사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대세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나와 비슷한 소수의 목소리도 있음을 알기에 굳이 시간을 들여 의견을 남겨 본다.



이 정도 생각의 자유는 표현해도 되는 나라가 맞을 것이다.



https://brunch.co.kr/@richlemon/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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