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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Apr 24. 2021

두 번째 코로나 검사

신속한 백신 접종을 기대하며


다가오는 주말을 기다리던 금요일 오후였다. 토요일 일정을 떠올리며 내심 들떠 있던 마음은 날벼락같은 문자 한 통에 순식간에 바닥까지, 아니 저 먼 심해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XX구 보건소 질병관리과입니다.

귀하께서는 코로나 19 관련 검사 대상자입니다."

로 시작하는 문자는 직장이 있는 구 보건소에서 온 연락이었다.



운동 좀 해 보겠다고 주중 아침에 들렀던 직장 옆 휘트니스가 화근(?)이었나 보다. 휘트니스를 다녀온 날짜와 시간대가 적혀 있었고,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나 보다.



코로나 검사받아야 한다고 큰소리로 외칠 수도 없는 사무실 안이었다. 담당 부서에 전화를 하고, 상사와 팀원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부랴부랴 노트북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보통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때가 많은 편인데, 하필 차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검색해 보니 마침 집 근처에 코로나 검사가 가능한 병원이 있었다.



버스 한 번이면 가는 곳이니 바로 가서 검사를 하고, 걸어서 집에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오래지 않아 도착했고아직 퇴근 시간 전의 늦은 오후인지라 다행히 한산했다.







가는 길은 좌불안석, 초조한 마음으로 지난 며칠을 떠올려 보았다. 사무실 안에서는 늘 마스크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 음료를 마실 때나 점심을 먹을 때(주로 책상에서 혼자 먹는 방식)는 당연히 마스크를 벗기도 했다.



휘트니스를 가서 운동을 할 때도 마스크를 벗은 적은 없고, 사우나는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니 탈의실은 꼭 갔다. 아마도 확진자와 그런 동선이 겹치지 않았을까?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과 함께 회의하고 대화하고 커피 마신 사람들, 집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주르륵 떠올랐다.



다시 한번 가고 있는 병원을 검색해 보았다. 버스 탑승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진료 시간은 5시까지가 맞는데, 접수 시간은 4시 30분까지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이런 청천벽력이...... 그때가 4시 10분 정도, 아무리 차가 안 막히고 가더라도 30분까지는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달려갔어야 하나, 무슨 배짱으로 정확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버스를 탔을까, 그냥 직장 근처 가까운 보건소로 갈 걸 그랬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버스에 앉은 시간 동안 폭풍 같은 걱정과 후회가 밀려왔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내리자마자 달려간 병원, 코로나 검사소 입구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4시 38분이었다. 입구에는 '마감'이라는 팻말로 막혀 있었고, 안이 들여다 보이는 검사소에는 아직 의료진들이 있었다. 애타는 심정으로 조금 늦게 왔는데 안 되겠냐고 물어봤지만, '안됩니다, 끝났습니다.'라는 기계적인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정해진 시간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일이니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로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료소 앞에 서서 근처 몇 군데 병원과 질병관리본부에 전화를 돌렸다.



- 보건소와 선별 진료소는 5시까지만 진료가 가능한데, 4시 반 혹은 4시 45분까지는 접수 마감

- 그 이후에는 어떤 경우에도 검사가 불가능하며

- 대학병원 등 상급병원 응급실을 통해 자비를 들여 검사를 한다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는 것을 전화 몇 통으로 알게 되었다.



바로 포기하지 못하고 5시까지 여기저기 전화를 하다가 결국 집으로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다. 양쪽 어깨에 하나씩 멘 가방과 노트북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흔히 알고 있는 코로나 증상은 없었다. 다만 일주일의 피로가 쌓였던 데다가 긴장한 탓인지 집에 오자마자 기진맥진이 되어 드러누웠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되도록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였다.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니 저녁때였고 아이들과는 따로 식사를 하였다.






첫 번째 코로나 검사는 작년 여름 무렵이었다. 같은 층 다른 팀의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당시는 코로나에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던 듯하다. 회사는 비상 체제로 돌입해 전 직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재택근무를 시행하였다.



천만다행으로 그 직원을 통한 2차 감염 사례는 전혀 없었고, 어린아이가 있던 그분의 가족들 또한 코로나 추가 확진이 없었던 좋은(?) 사례였다.



이후 코로나가 흔한 일상생활이 되면서 '확진자와 동선 겹침'으로 검사를 받았다는 여러 사례를 접했지만, 역시 내가 그 경우에 해당이 되니 처음 검사를 받는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다음 날, 마침 토요일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 9시 전에 검사소 앞에 도착하였다. 내 앞으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줄 서 있었고, 접수하고 대기하고 코로나 검사를 하고 수납까지 마치고 나오니 - 보건소나 선별 진료소가 아닌 병원 검사소여서 자비 수납 - 무려 오가는 시간까지 합쳐 두 시간이나 소요되었다.



검사 막대로 코를 쑤시는 순간은 처음 맛보는 고통이었다. 첫 번째 검사 때 십만 원 가까운 비용을 지출하며 대학병원에서 검사해서인가, 그때는 독감 검사와 비슷하게 거의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막대로 코를 어찌나 깊숙이 찌르는지 하늘에서 별이 보이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얼얼한 코를 느끼며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집에서만 머무르고 있는 지금, 아직 코로나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24시간 내에 문자 통보된다고 하니 늦어도 내일 이른 오전에는 알 수 있겠지.






마스크가 최고의 백신이라는 홍보 문구는 이제 제발 사절하고 싶다. 최고의 백신은 임상을 거쳐 안전성이 입증된 백신일 뿐이지, 마스크가 백신이 될 수 없는 일 아닌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는 K방역의 실체도 자세히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아무리 백신을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라고 해도,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대국인 우리나라가 왜 OECD 회원 국가 37개 나라 중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35위인지는 심히 궁금하다. 3명 중 한 명의 접종이 완료된 백신 보유국 미국의 사례나, 접종률이 70%가 넘어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고 나라의 대문까지 연 이스라엘 경우와는 비교할 마음도 없다.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코로나 접종은 언제 우리 부모님 세대가 끝나고 아이들이 먼저 맞고, 40대인 나에게도 차례가 돌아올 것인가. 올해는 거의 힘들어 보이는데, 최소한 내년에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의 두 번째 코로나 검사 결과만큼이나 매우 궁금할 뿐이다. 부디 제발 음성으로 나오길......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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