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치레몬 Jan 26. 2021

진보의 실체

지긋지긋한 성추문 행렬과 그 논란을 지켜보며


*본 게시물은 정치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 정치란 부모-자식과 부부 사이에서도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매우 주관적인 분야입니다. 읽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는 1~99%의 가능성이 꺼려지신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기' 버튼을 눌러 읽지 않으시는 것을 적극 권장드립니다.




신체적으로 여성이 약자로 타고난 것은 '일반적인' 사실이고, 사회적으로 여성이 약자인 것은 이제껏 세계의 공통적인 흐름이자 현상이었다. 남성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여성은 유산을 상속받을 없었던 것은 불과 그리 오래되지 않은 서구의 선진국에서 있었던 명백한 기록이자 역사이다.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부지불식간에 겪었던 성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내가 사는 곳이 '대한민국이라서'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여러 가지의 나쁜 경험들이 있다. 천만다행으로 그러한 일들이 큰 외상이나 트라우마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수영을 배웠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뭔가 서로 작당한 듯 수영을 하는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물속에 잠수해 수영을 하는데, 남자애 한 명이 다가오더니 가슴을 만지고 도망쳤다. 작정하고 한 일이 분명하므로, 따라가서 등짝을 시원하게 발로 차 주었다. 잘못한 것은 아는지, 등을 맞은 아이는 가만히 있었고 옆에 있던 친구는 숨죽여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대학생 때, 밤 9시에서 10시 사이 귀가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였고 내가 살던 동이 바로 앞에 보일 만큼 가까이 있었다. 혼자 걸어가는데, 뒤쪽에서 남학생이 나타나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밤길에 이성인 남자를 마주치는 일은 흔하기도 하고, 뒤에 온다고 해서 나를 따라온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잘 알지만, 그 날은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뛰지는 않았지만 빠른 보폭으로 나를 따라온(것이 맞았던 것이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는 잽싸게 가슴을 만진 다음 엄청난 속도로 도망쳐 버렸다.



두 번째 사례 같은 경우는, 굽이 약간 있는 신발을 신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따라가서 잡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너무 깜짝 놀랐고 무섭기도 해서,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떠올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다만 소리조차 못 지른 것이 두고두고 너무 아쉽다. 뒤통수에 대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줬어야 했는데......






이런 자질구레한 -이라고 적으면서도 나도 성폭력에 너무 둔감해진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 일들은 이외에도 차고 넘치지만, 겨우 두 개를 적으면서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아 졌으므로 이쯤에서 그만한다.



무려 30년,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이다. 30년도 더 지났거나 혹은 30년이 가까워지는 일들인데도 그때의 분노를 지금도 떠올릴 만큼, 순간의 당혹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어떠할까, 감히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 성폭력의 피해자는 사실 젠더와는 무관하기에 - 용기 내어 피해를 사회에 알리고,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길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딸과 아들을 키우는 부모와 엄마 입장에서, 원치 않는 타인의 성적 행동과 언어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최대한 낮아진, 성숙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예전만큼 정치에 관심을 두지는 않지만, 사회인으로서 또 가정을 이끌어가는 부모로서 정치를 아예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하기에 딱 그만큼만 살펴보며 살고 싶은데, 연이어 터지는 성추문은 마음이나마 평안해지고 싶은 현실을 부정한다.



부산, 충청북도, 서울에 이어서 이번에는 진보 정당 한 곳의 대표가 같은 당 여성 의원을 성추행했다고 한다. 기존의 보수 세력에서 나왔던 성추문도 만만치 않았으며 여러 사례들이 있었다는 것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앞으로 진보에서 어떤 성추문이 나와도 이제는 더 이상 놀랄 것 같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가장 경악한 부분은 현 정권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내로남불과 후안무치, 바로 그 지점이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전 서울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나왔을 때, 성 평등과 성폭력 추방을 주장하던 진보는 일제히 침묵하였다. 피해자와 동성인 여성 최고위원이나 국회의원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범죄자일 수도 있는 전 시장 장례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국가장으로 거대하게 치러졌고, 잘잘못을 묻는 질문에는 '어디서 감히 예의도 없이'라고 매섭게 쏘아보는 당 대표의 시선이 대답이었다.



백번 양보하자면,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을 조사하고 확인해야 하니 - 우리는 꽃뱀이랄지 전문적인 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카사노바 등의 부류를 잘 알고 있다 - 죽은 사람에게는 애도를 보내고, 산 사람을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것에는 조금이나마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르자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던지, '피해를 호소하긴 하는데 실제 있었던 일은 이러했다'라는 조사를 누구나 납득이 갈 만큼 하고 공개했어야 한다.



일반인이 아닌, 같은 진보 진영 및 정당의 국회의원을 성추행하면, 국회의원은 그 즉시 '피해자'로 인정받으며,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물러나고 처분을 기다리면 용기 있는 행동인 건가? 왜 원치 않는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누군가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해괴망측한 신조어로 불리고, 왜 누군가는 바로 '피해자'가 되는가?



왜 비슷한 맥락의 일에 다른 호칭이 적용되는가?

대체 당신들이 무엇이길래?



전 서울 시장 사건 때는 침묵하고 애도에 바빴던 큰 집의 사람들이,

왜 작은 집의 사건에는 일제히 비난을 하고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가?

당신들에게 어떤 면책 특권이 있길래?

왜 당신들은 늘 법 위에 군림하고, 멋대로 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제는 지켜보는 내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그 사람들, 그야말로 지긋지긋하다.



이렇게 지겨워하면서도 기가 막힌 사건들의 연속에 참지 못하고 또 글을 쓴다.



정말 국민들을 어디까지 놀라게 하고 실망시킬 것인가.

더 이상 얼마만큼 나락으로 떨어져야 제정신을 차릴 것인가.

아니 애초에 '올바른 정치'에 대한 개념이 있는 사람들인가, 당신들은?




https://brunch.co.kr/@richlemon/26




매거진의 이전글 586세대의 현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