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난 3이라는 숫자가 좋았다. 1은 너무 외롭고 2는 균형은 맞지만 평범하다. 3은 든든하고 완벽한 조합 같았다. 그렇게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더니 내 곁에 온통 3만 남았다.
33살, 사기로 남겨진 빚 3억, 그리고 딸 셋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있을까. 작가가 작정하고 3자에 한 여자의 인생을 바쳤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장르는 분명 코미디였을 거야. 벌써 소주도 세병째인데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게 미쳤다.
남편에게 3억이라는 빚이 생겼다고 말했고
머지않아 그와 나는 이혼이라는 종이에 함께 서명을 했다.
어찌보면 지인으로 생긴 빚 3억이니 내 탓, 네 탓을 따질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있는 돈 없는돈 다 끌어모아 가져다준 사람도 나인건 맞는데 함께 헤쳐나가길 바란건 내 욕심일테지...당시엔 좀 많이 서운했다.
그렇게 집에서 말리던 결혼을 불사한 나의 10년짜리 결혼은 끝이 났다. 마치 만기 채권을 돌려받는 사람처럼 너무나 쉽게 다가왔다. 그렇게 인생의 중대사란 결혼, 이혼이란 거 결국 내겐 종이 한 장짜리 가치였다.
+ 소주 1병: 양가감정. 내게 사기 친 지인에게도 화가 났다. 정작 본인도 돈을 날렸다. 엄연히 그 빌딩을 담보로 윗사람이 돈을 들고 튄 것이다. 고소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그 사람도 피해자다. 지인집도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
+ 소주 1병 반: 남겨진 이 상황이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다시 붙잡을까. 한 번만 봐달라고 매달릴까. 애가 셋인데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애들이 2명인데....... 별의별 생각이 든다.남편에게 매달리자. 내가 굽히고 기어도 좋으니 앞으로 생활이 어떻든 그냥 같이 해달라고 매달리자. 결론은 내가 잘못한 것이잖아. 생활능력은 없어도 옆에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도 어쩔수 없었을것이다. 같이 죽을 수는 없으니...
+ 소주 2병: 이혼합의서에 사인해 놓고 혼자 화가 치민다. 그동안의 결혼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는 남편이 마냥 좋았다. 착하면 됐다고 했는데 어쩔수 없었을 그를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화가난다.
애초에 어른들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사이가 좋지 않은 아빠마저 반대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이마저 내 선택이고 내 결과다. 수용해야지
+ 소주 2병 반: 점점 취기가 가시고 정신이 또렷해진다.사기를 당하고 빚을 지자 수많은 인간관계가 싸그리 정리되던.. 그때, 내 편은 너무나 많이 사라지는게 슬펐다.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이대로 무너질순 없다.
+ 소주 3병: 슬프거나 무섭거나 이런 감정도 사라졌다. 일단 닥치는 것부터 하자. 하루하루 해결하자. 빚진 지인들의 돈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는 내가 살수 없을 것 같았다.시간이 걸려도 좋다.
그렇게 날이 샜다. 나는 기어코 살아야 한다. 죽고 싶어도 빚은 다 갚고 죽어야 한다. 그리고 세 아이에겐 빚을 대물림 해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