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따개비들로 가득하다.
이 모든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벌써 5년전 일이다. 시간 참 빠르다. 그때는 하루하루 사는게 너무 힘들어 이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매일처럼 쫒기는 일상에 매번 휴대전화에 남겨진 부재중 전화 수백통, 카톡을 읽기가 무서운 시절이 있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왜 내게 이런일이 일어난거야라는 생각과 더불어 팔자 한번 못펴보는 내 인생이 서러웠다. 고향친한 친구 수연이가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주영이 네인생, 마치 따개비인생같아.
왠 따개비?
소라나 바위에 붙어있는 따개비있잖아. 네 주변은 그런 따개비들이 천지야. 지금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내 주위엔 항상 친구들, 사람들이 많았다. 헌데 모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 천지였다. 친구들이 왕따가 되면 무슨일이있으면 항상 내가 보듬어 주었다. 뭔가 일이 있으면 항상 내가 해결을 했다. 난 씩씩하고 명랑했다.
충북 시골 농촌바닥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내겐 방과 후 자유시간, 주말 따위는 없었다. 가족 모두가 전투적으로 아빠가 벌린 농사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때부터 새벽마다 눈을 비비고 잠도 덜 깬 남동생을 다독이며 깨우고 소 먹이를 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제 보니 나는 일을 참 잘했다. 나는 오남매중 가장 명랑한 넷째였다.
넌, 우리집 장남이여.
멀쩡히 오빠도 언니도 있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내게 부모님은 하나했다. 시간이 지나보니 자연히 알게되었다. 모든 집안의 대소사도 어느새 내 몫이 되어있었다.
결혼도 손이 유난히 희고 고운 대전근교에서 곱게자란 외동아들과 했다. 전 남편은 농촌일이라곤 벼 대가리도 안잡아본 샌님이다. 얼굴도 곱상하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하고 식당을 운영했던 시댁의 모든일을 세아이를 낳으면서도 도맡게 되었다.
그렇게 일복하나는 터진년, 바로 나였다.
생각해보니 결혼, 도피처였다. 결혼하면 이 지긋지긋한 농촌바닥을 떠날 수 있을것 같았다. 매일같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대학에 가서도 주말마다 아버지의 호출에 내려와야했다. 다른 형제들은 크면서 점점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난 그럴수없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아빠에게 가정폭력으로 평생 얼굴한번 못드는 엄마가 이 모든 것을 해야한다. 아빠의 의처증에 화풀이 대상이 되어 매일처럼 멍들어있는 매맞는 아내, 바로 우리 엄마였다.
막상 3억의 빚, 이혼과 더불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두렵다. 그리고 막막했다. 솔직히 안좋은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나만 죽으면 되는데 남겨진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던 아껴주던 내 편인 엄마, 그리고 죄없는 아이들, 생각해보니 나에게 돈을 빌려준 친구들도 그렇다. 미안함에 죽어버리면 결국 영원한 미안함이 된다. 결국 죽는것도 무책임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안한만큼, 절박한만큼 살아내어보자
앗 선생님, 아쉬워요. 다시 생각해보시면 안되나요?
네 제가 이사를 갔어요.
어머님들과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하시겠어요. 요즘 선생님 같은 분 정말 없는데......
3년간 정든 어린이집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나를 잡아주는 사람의 말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내가 그렇게 개차반처럼 산 것은 아니었어......
이제보니 내가 꽤 이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매일 출근할때는 스트레스도 받았다. 요즘 학부모들이 워낙 민감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인지라 매번이 살얼음이었다. 한편으론 내 새끼들 놔두고 남의 아이들을 돌보러 출근하는게 맞는가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이제보니 행복에 겨워 그런 고민도 한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매일 아침을 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정말 좋았던 것인데......
일단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식당주방에 들어갔다. 하루종일 쌓여가는 설거지 그래도 수입이 더 많았다. 손님이 매번 미친듯이 몰려오는건 아니라 가끔 허리를 펼 수는 있었다. 밤에는 술집 주방에서 안주를 새벽2시까지 만들었다. 3 시간 자고 편의점에가서 오전 11시까지 카운를 봤다.
11시~ 8시 식당 설거지 및 주방
9시 ~ 새벽 2시 술집 주점 주방안주만들기
5시~ 11시 편의점 카운터
이렇게 밤낮, 휴일 없이 하다보니 한달이면 내 손에 500~600만원이 들어왔다. 처음엔 최소한의 생계비를 제외하고 모두 빚을 갚았다. 하지만 내 몸뚱이가 하나인지라 점점 지쳐가고 몸이 아픈 날엔 일당이 쑥 떨어지곤했다. 몸빵하는것도 한계가 있구나. 이렇게 평생지낼순 없었다.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