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손님이 들어오셨다.
'"처녀! 내가 김밥이 너무 먹고 싶은데 5줄을 다 못 먹어"
우리 김밥은 꼬마김밥인데 사이즈가 일반 꼬마보다 훨씬 크다.
"네 할머니! 그럼 드시고 남으면 그거 포장해 드릴까요?"
"아니! 내가 가지고 가면 맛없어. 여기서 먹어야지. 킵해줘"
와인바도 아니고 양주도 아니고 김밥을 ' 킵'해달라니.....
갑자기 웃음이 팍 터졌다.
"할머니 그렇게 해드릴게요. 혹시 나중에 제가 기억 못 하면 꼭 이야기해 주셔야 해요!"
배달과 홀손님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날, 갑자기 또 다른 할머니 손님이 오셨다.
보통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라고 말씀드린다. 주문과 조리를 같이 하면서 응대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나처럼 1인으로 운영하는 곳은 키오스크는 단비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보통 어르신들은 기계에 약해서 웬만하면 주방에서 나와 응대를 하는 편이다.
"뭐 드릴 까요?"
" 응 기본김밥 큰 거두개 줘"
"네 할머니 12000원이에요"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선반 위에 부으신다. 뭐가 갑자기 우르르 쏟아진다.
10원, 50원, 100원 한 무더기다. 갑자기 멘붕이 왔다.
주문은 밀리고 조리해서 나가야 하고.... 일일이 셀 수가 없었다.
"이거 12000원인 거죠? 그럼 그냥 두셔요. 빨리 김밥 싸드릴게요!"
"응. 근데 세어봐. 지금"
"뭐 맞겠죠. 지금 좀 바빠서 셀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할머니가 지금 당장 돈을 세라고 재촉하신다.
몰려드는 배달앱, 홀에 나가야 할 조리식품, 지금 싸야 하는 김밥들 사이에서 정신이 없는데 잔돈을 구분해서 세야 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냥 두고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충 세는 척하고 말했다.
"할머니 맞아요! "
"대충 세는 것 같은데. 그거 다 12000원 아닌디. 다시 세봐. 돈계산 그리하는 거 아니여"
하며 갑자기 호통을 친다.
" 제가 지금 너무 바빠서 이거 셀 여유가 없어요. 맞는 거 같아요. "
하지만 할머니는 그 동전을 다 세기 전에 나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으신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를 두고 주방안으로 돌아갈수도 없어 난감했다.
때마침 언니가 왔고 언니는 할머니의 요구대로 십 원짜리 , 오십 원, 100원을 차례로 쌓아 보여드린 후 할머니의 계산을 마쳤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외상은 가급적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가끔 어쩔 수 없이 외상을 하는 손님들이 있다. 지갑을 놓고 왔다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 나는 종종 외상을 해주곤 했다.
그런데 한 손님이 고객들을 데리고 와서 식사를 했다. 동네에서 서로 얼굴 보는 사이이기도 하고 자주오진 않았지만 한 달에 두어 번 오는 손님이다. 바로 사무실에 가서 음식값을 보대 준다더니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좀 더 기다릴까?'
'그냥 보내주시라고 할까? 3만 원인데 너무 재촉하는 것 같나?'
고민 끝에 문자를 보냈다. 외상손님은 깜빡했다고 보내준다고 계좌번호를 남기라고 한다.
하루이틀 그리고 감감무소식!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전화하기가 좀 그래서 문자를 보냈다. 오늘 꼭 좀 부탁한다고.......
알았다고 하더니 또 하루가 지났다.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화를 내야하나? 성격 더럽다고 동네 소문 퍼지지 않을까.....'
그렇게 정작 외상을 한 것에 대한 것에 이상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루종일 생각이 났다. 결국 다시 한번 문자로 ' 깜빡 잊으신 것 같아요. 저도 정산을 해야 해서 오늘 안 입금 부탁 드랍니다'라고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그날 저녁, 입금을 했다. 참 어렵게 벌은 3만 원이었다.
여느 때처럼 배달주문이 들어왔다. 가만 보니 평소에 아이들이 먹던 집이다. 원래 김밥을 잘라주진 않는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나처럼 혼자 일을 하면 손이 많이 가는일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먹을 거라 시간이 좀 걸려도 잘라서 배달을 보냈다. 그날 배달리뷰에 이런 내용이 남겨졌다
"사장님 미처 잘라달라고 말씀 못 드렸는데 아이들이 먹기 좋게 잘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묵탕도 안 맵게 다시 끓여주셔서 더 감사하고요."
평소 손님들에게 관심을 계속 가졌기에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맞출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장사하는 입장에서 이런 리뷰, 응원은 정말 힘이 난다. 그동안 서너 개의 김밥집이 폐업을 했다. 특히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더 많았다. 하지만 어쩌면 개인김밥으로도 특별한 광고 없이도 이 동네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비단맛뿐 아니라 이러한 작은 관심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