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그중 가장 먼저 내려놓은 것은 바로 ' 자존심'이다.
'그런 일 어떻게 해. 그런 말 나는 못해'
내 장사는 그런 고고하고 꼿꼿하게 있으면서 우아하게 하는 장사가 아니다.
나는 남에게 부탁이란 것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보통 남이 나에게 하는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이지 내가 먼저 부탁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렇게 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새로운 일, 특히 장사?라는 것에 뛰어들고 나서부터는 '자존심' '나는 그런 것 못해' 따위의 단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다보니 처음이 부끄럽고 어색하지 점점 늘었다.
그냥 지나 가는 사람에게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가게 김밥 드시러 오세요~" 넉살스럽게 말도 던질 줄도 알게 되었다. 처음 시장에서 매일새벽 재료구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깎을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 사장님 저 계속 여기 오잖아요. 그니깐 조금만 더 주세요~'라고 전에는 하지 않았던 말도 했다.
초반 유치원을 그만두고 한참 장사에 매진을 하고 있던 어느 토요일 오후. 쌓여있는 단체주문과 그날따라 정신이 없던 하루를 보내 머리가 그날따라 산발한 채였다.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조리를 하다 말고 '어서 오세요~ '하며 뛰쳐나갔다. 가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a 학부모다.
"어? 선생님. 그만두시고 김밥장사하세요?"
했을 때 공기에 흐르던 어색함. 그날따라 나는 나답게 대응을 전혀 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냥 "네~" 하면 그냥 웃었는데 집에 돌아와 가만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이 못나보였다.
평소라면
"네~ 저 그만두고 장사해요~. 이제 김밥가게 사장이에요~"이렇게 했을 텐데....왜 그러지 못한걸까?
'뭐지? 강주영. 네 스스로 선생님이 김밥사장보다 낫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지금 네 모습이 전보다 낫지 않다고 생각한 거야? 아님 땀범범에 동분서주한 모습을 보여서 그게 창피한 거야?'
솔직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빚 3억, 이혼,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장사 거기에 인맥하나는 최고였는데 이런 내 사정과 혹시나 자신에게 돈이라도 빌려달랄까봐 점점 멀리하는 친했다고 생각하는 친구, 지인들로부터 받은 상처에 나 스스로 아직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던 게 맞을 것이다.
솔직히 잘 되어 내가 선택한 장사라면 원래보다 더 당당하고 밝았을 텐데..... 솔직히 나의 자존심과 신용은 이미 바닥이라 솔직히 뭐,,, 더 내려갈 곳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래도 정말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다. 나 스스로 이 상황에 젖어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 암울한 생각, 언제 빚 다 갚냐라는 걱정과 분노를 말이나 행동으로 내뱉는 순간 더 가라앉을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게 정작 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정말 나 자신까지 그러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 나갈 때 몇 천만 원도 불려달라고 안기던 이들이 제일먼저 돌아섰다. 그래도 내 덕에 돈도 벌고 그랬었는데 막상 내가 이런 처지가 되니 가게재료, 월세, 애들과 살아야 해서 필요한 몇십만 원도 잘 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빌린 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갚았다. 장사가 잘 안 될 때를 말고는 시간이 좀 걸려도 무조건 갚았다. 어쩌면, 그게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놈의 애증의 일수를 초반 이후에도 몇 번씩 쓸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 액수를 이제 와서 계산해 보니 몇 천은 될 것 같다. 매번 다시는 안 쓴다 하면서도 쪼들리는 생활에 어쩔 수 없이 택했던 그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