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담당 공공조직 협업 사례
요즘은 영리 기업이든 공공 조직이든 일을 하는데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일반론으로 자리 잡은 듯싶다. 실제 사업 운영이나 업무에 데이터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용하는지와는 별개로 '데이터를 쓰면 좋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라던가 '데이터를 활용하긴 해야 한다'는 숙제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조직이 이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데이터가 왜 필요한지' '데이터 기반으로 일하는 게 왜 좋은지'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첫 미팅에서 '데이터를 활용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데이터를 어떻게 쌓고 가공하면 좋을지'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분석가 입장에서는 이전에 비해 업무 환경이 훨씬 수월해진 셈이다.
데이터 혹은 데이터 분석,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표현이 일반 상식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기준에 따라 다르겠으나 내 생각에는 2010년대 넘어오면서 훅 불었던 빅데이터 열풍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공공 기관에서도 데이터 기반으로 업무를 하는 것은 이전에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고 새로운 종류의 일들이 추가되기 때문에 영 어색하고 달갑지 않았으나, 서울시 올빼미 버스(심야버스 노선)가 지방행정정보화 대통령상 수상, 지방자치 정책혁신 대상 등을 수상하며 성과를 보이고 난 후 다수의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데이터 기반 혁신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서울시 심야버스 관련 자료 링크: https://bigdata.seoul.go.kr/recsroom/selectRecsRoom.do?r_id=P870&recsroom_seq=7&sch_type=&sch_text=¤tPage=1
소방서나 119 센터, 경찰, 도시 시설 관리 공단, 교통 관청 등 각 기관에서 이미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또는 앞으로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각자의 업무를 개선하고 대 시민 서비스를 보다 잘하고자 의욕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바쁜 업무 중에 짬을 내어 데이터 분석 컨설팅 회사와 미팅을 하기도 하고, 각 기관에서 보유하지 않은 빅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통신사 등 타 조직들과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공공 서비스가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셈이다.
공공 서비스 특성상 대부분은 부족한 자원으로 운영되고 미션 중심의 조직이다 보니, 데이터와 관련된 고민이 시작될 무렵에는 기관 전체가 데이터 기반 혁신으로 움직이는 경우보다는 데이터 보유가 많거나 데이터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한 개 팀에서 국부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해당 팀을 만나기 위해 기관에 방문했다가, 그 팀이 아니라 다른 팀이 오히려 데이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경우를 발견하는 일도 잦았다. 치안 업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치안 업무의 경우, 시간을 다투는 일이 대부분이고 특히 업무에 실패할 경우 피해자들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하고 보수적인 조직이었다. 보수적이라 함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기존에 잘 잡힌 질서를 최대한 준수해서 최고의 효율을 이끌어내고자 했다는 의미이다.
협력 초반에는 치안 업무 부서에 데이터 활용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수사관들의 시간을 얼마나 줄여드릴 수 있는지 설명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그거 좋은 줄은 알겠지만, 우리가 그걸 배우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동안에 하나 라도 더 해결해야 한다'였고,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방해가 되지 않게 옆을 지키며 조심스럽게 백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사관님은 기존 방식대로 업무를 하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분석 알고리즘을 돌려서 결과를 드리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당시 피싱이 굉장히 창궐하던 시기였는데, 피싱 관련 수사를 위해서는 관련이 있는 모든 전화번호와 금융 기관 거래 내역 정보를 수집해서 돈이 어떻게 돌고 돌아서 최종 어떤 계좌로 들어가는지를 추적해야 했다.
이 작업을 위해 수사관님들 몇 분이서 엑셀을 활용해서 며칠 씩 날을 새 가며 거래 내역을 추적했다. 뻔하게도 피싱 조직들은 추적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계좌를 자주 바꾸고 돈을 이리저리 돌린다. 그래서 거래 내역 건 수도 굉장히 많아지고 입/출금 내역을 눈으로 따라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사관들은 '눈이 빠질 지경'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이 사례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이전 직장인 게임 회사에서 봇 공장을 돌린 후 돈을 하나의 계좌로 몰아서 현금화하는 작업장(불량 계정) 분석 사례를 경험했던 것이다.
엔씨소프트 게임 데이터 네트워크 분석 사례: https://blog.ncsoft.com/네트워크-분석기법을-활용한-게임-데이터-분석-2/
다수의 금융 기관에서 입수한 거래 내역을 추적하기 위해 네트워크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 후 초보자들이 사용하기 쉬운 네트워크 분석 도구를 찾아서 분석을 돌려보았다. 데이터 전처리 시간을 제외하고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돈이 모이는 계좌가 확인되었다. 옆에서 미심쩍어하며 지켜보던 수사관님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찾아진 계좌를 파기 시작해서 수 일 내에 수십 억 규모의 피싱 조직 범죄 근거지를 소탕하고 검거에 성공했다. 그 이후 수사관님들이 데이터를 대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누그러졌고, 네트워크 분석 도구를 해당 기관 내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잘 사용하기 위한 교육 자료 작성 및 강의 등으로 지원을 해드릴 수 있었다.
조직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조직을 움직이는 키는 성과다. 특히 실무선에서 변화를 원한다면 또 즉각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오늘의 업무가 편해지는 개선 바로 눈 앞에서 확인 가능한 개선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주의할 점은 크던 작던 업무 완결성이 있는 단위 전체에 한꺼번에 개선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위의 사례에서는 적절한 데이터 분석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사전 수사가 빠르고 편해졌고, 그 결과로 용의자 특정 및 검거 작업까지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업무만 빨라지고 실제 검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혹은 고도의 데이터 분석 기법을 적용하느라 사전 수사 과정이 더 어렵고 느려졌다면, 위와 같은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이 있다. 말을 힘들게 끌고 가지 말고, 말이 목마르게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