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님 Aug 15. 2024

우리에게는 ‘공간’이 있다

너의작업실


사진첩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2020년 4월까지. 잊을만 하면 한번씩 꺼내 보는 처음의 모습이 나올 때까지.

모로 누우면 내가 세 명 정도 들어갈까 싶은 작은 공간 가운데 달랑 책상 두 개, 창가에 두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전부다.


새로 들인 책상에 흠이라도 낼까 싶어 아이들을 단속하면 “괜찮아요~ 저는 물건에 큰 애착이 없어요.“ 하면서 씩 웃고 알로에 주스며 토마토 주스를 내 주던 삼십대의 탱은 과연 이게 될까, 하면서도 기어이 동네 한 켠에 책방 문을 열었다.  

탱님이 색연필로 그려 만든 달님이(고양이) 스티커가 샘플 책에 붙어 있다. 오른쪽은 클레이로 만든 곰(탱님), 책(나)
너의작업실 1기



2020년 8월, 작업실은 자리를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

이전 작업실 시작한 지 3개월 남짓 지났을 때였다.

   

시간 날 때마다 이리 저리 다니며 공간을 알아보던 탱이 어느날 가계약을 했다고, 이제 아침에 문도 일찍 열고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한다고 했을 때, 이틀 만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취소했다고 다시 알아본다고 했을 때, 다시 일주일만에 진짜 이전하기로 했다고 알렸을 때, 나는 얼떨떨했다.

탱님은 휘몰아치는 고민 속에 잠시 머물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한껏 두려워하고 걱정하면서도 이윽고 몸을 일으켜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듣고, 제 마음을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화끈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새로 옮긴 자리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1호 북토크 이병률 작가, 2호는 이랑 작가… 그 이후 지금까지 이제는 몇 호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의 북토크가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작가와 독자들이 너의 작업실에 발도장을 찍었다.


우리 글을 써 보자고 열렸던 글방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친구들을 만났고, 책바구니를 꾸려 보자, 구독 서비스를 해 보자, 도장을 찍어 주자. 영화 수업도, 피아노 수업도 열리고 일요일 아침마다 어린이들의 그림책 수업도 진행되었다.  


탱님은 내게 글 쓰는 자리를 계속해서 열어준 사람.

잘한다, 잘쓴다 끊임없이 격려해 준 사람.

그림책 소개를 해 보자며 내게 숨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


추천한 책이 팔리면 진짜 기분이 좋다며 웃는 사람.

좋아하는 작가님이 행사 마치고 돌아갈 때면 자동차 꽁무니 불빛이 없어질 때까지 지켜보는 사람.

짧은 공지든, 긴 편지든 늘 정성으로 쓰는 사람.

사람 많은 자리에서는 파르르 손끝을 떨지만 할말은 다 하고 자리에 앉는 사람.

잘 쓰는 사람. 잘 들어주는 사람.


황인찬 시인 북토크/ 작업실 로고 스티커와 책갈피, 꽃마리님의 달걀!



2023년 8월. 작업실은 다시 자리를 옮겼다.

탱님이 책방을 더 넓혀 가야겠다고 했을 때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옮겨 갈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여름, 가을, 겨울, 봄이 지나 다시 여름.

지금의 장소로 옮긴 지 딱 일 년이 됐다.


이제 그만 할까, 하는 마음은 늘상 탱님 발치에 느슨하게 매달려 있다가 어느 몸이 힘들었던 날, 종종 마음이 부대끼는 날 훅 하고 올라온다.

그러면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다급해져서 책을 삼십 권씩 사야되겠다고, 이룰 능력 없는 다짐을 하면서 탱님이 무슨 얘기든 더 할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책방 친구는 탱과 맥주 한 잔 하고, 다른 친구는 함께 산책을 하고. 마당에서 꽃을 꺾어다 주고.  

그렇게 하룻밤이 또 가고.


다음날 작업실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면 웃으며 손을 흔드는 탱이 있다. 이제는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고 스콘을 굽는 탱. 조금만 망설이고 그냥 해 버리는 탱이 뭐라도 하고 가라며 등을 떠민다.  



작가의 이전글 2023.3.2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