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작업실
사진첩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2020년 4월까지. 잊을만 하면 한번씩 꺼내 보는 처음의 모습이 나올 때까지.
모로 누우면 내가 세 명 정도 들어갈까 싶은 작은 공간 가운데 달랑 책상 두 개, 창가에 두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전부다.
새로 들인 책상에 흠이라도 낼까 싶어 아이들을 단속하면 “괜찮아요~ 저는 물건에 큰 애착이 없어요.“ 하면서 씩 웃고 알로에 주스며 토마토 주스를 내 주던 삼십대의 탱은 과연 이게 될까, 하면서도 기어이 동네 한 켠에 책방 문을 열었다.
2020년 8월, 작업실은 자리를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
이전 작업실 시작한 지 3개월 남짓 지났을 때였다.
시간 날 때마다 이리 저리 다니며 공간을 알아보던 탱이 어느날 가계약을 했다고, 이제 아침에 문도 일찍 열고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한다고 했을 때, 이틀 만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취소했다고 다시 알아본다고 했을 때, 다시 일주일만에 진짜 이전하기로 했다고 알렸을 때, 나는 얼떨떨했다.
탱님은 휘몰아치는 고민 속에 잠시 머물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한껏 두려워하고 걱정하면서도 이윽고 몸을 일으켜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듣고, 제 마음을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화끈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새로 옮긴 자리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1호 북토크 이병률 작가, 2호는 이랑 작가… 그 이후 지금까지 이제는 몇 호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의 북토크가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작가와 독자들이 너의 작업실에 발도장을 찍었다.
우리 글을 써 보자고 열렸던 글방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친구들을 만났고, 책바구니를 꾸려 보자, 구독 서비스를 해 보자, 도장을 찍어 주자. 영화 수업도, 피아노 수업도 열리고 일요일 아침마다 어린이들의 그림책 수업도 진행되었다.
탱님은 내게 글 쓰는 자리를 계속해서 열어준 사람.
잘한다, 잘쓴다 끊임없이 격려해 준 사람.
그림책 소개를 해 보자며 내게 숨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
추천한 책이 팔리면 진짜 기분이 좋다며 웃는 사람.
좋아하는 작가님이 행사 마치고 돌아갈 때면 자동차 꽁무니 불빛이 없어질 때까지 지켜보는 사람.
짧은 공지든, 긴 편지든 늘 정성으로 쓰는 사람.
사람 많은 자리에서는 파르르 손끝을 떨지만 할말은 다 하고 자리에 앉는 사람.
잘 쓰는 사람. 잘 들어주는 사람.
2023년 8월. 작업실은 다시 자리를 옮겼다.
탱님이 책방을 더 넓혀 가야겠다고 했을 때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옮겨 갈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여름, 가을, 겨울, 봄이 지나 다시 여름.
지금의 장소로 옮긴 지 딱 일 년이 됐다.
이제 그만 할까, 하는 마음은 늘상 탱님 발치에 느슨하게 매달려 있다가 어느 몸이 힘들었던 날, 종종 마음이 부대끼는 날 훅 하고 올라온다.
그러면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다급해져서 책을 삼십 권씩 사야되겠다고, 이룰 능력 없는 다짐을 하면서 탱님이 무슨 얘기든 더 할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책방 친구는 탱과 맥주 한 잔 하고, 다른 친구는 함께 산책을 하고. 마당에서 꽃을 꺾어다 주고.
그렇게 하룻밤이 또 가고.
다음날 작업실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면 웃으며 손을 흔드는 탱이 있다. 이제는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고 스콘을 굽는 탱. 조금만 망설이고 그냥 해 버리는 탱이 뭐라도 하고 가라며 등을 떠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