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씨의 수업 일기 (1)
김지씨는 정규 수업 시간에 할 수 없는 이런저런 희한한 시도들을 방과후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많이 해보는 편이다. 제목도 이상한 수업들을 개설해놓고, 관심있는 학생들을 불러다 놓은 뒤, 공공연하게 '난장판을 벌인다'고 이야기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그런 수업들을 했었다. 예를 들어 '음식으로 세상읽기'라는 수업에서는 음식의 역사를 조사, 발표한다는 핑계로 피자를 나눠먹거나, 콜라 시음회를 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세상읽기'라는 수업은 김지씨 집에 있던 커다란 사진책 몇 권을 갖다 놓고, 수업 시간 내내 사진에 대해 각자 썰을 푸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영화논술' 혹은 '영화와 사회'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지속했던 영화 읽기 수업은 그야말로 김지씨가 좋아하는 영화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학생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걸로 책도 냈다.
그런 이상한 수업 중에서 영화 읽기 수업과 함께 김지씨가 정성을 들여 몇 년째 하고 있는 수업이 있는데, 그게 '세계문학'과 관련된 수업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세계 각 언어권의 작품들을 골라 학생들과 함께 떠드는 수업을 김지씨는 거의 5~6년째 하고 있다. 김지씨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자체가 특수(^^)하기도 해서, 사실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소설 작품들을 찾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들은 김지씨의 교사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활력소가 된다. 마침 어제 수업이 김지씨에게 그런 순간이었기에 김지씨는 여기에 소개하고 싶어 한다. 성격 상 입이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아리엘 도르프만이라는 칠레 출신 작가가 있다. 아옌데 정권에서 문화공보 관련된 일을 하다가 피노체트 쿠데타를 맞는다. 그는 그날 대통령궁의 당직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당직을 바꿨기에 그는 그날 집에 있었다. 보통 그런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모든 당직자들은 비상소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의 상관은 집에 있던 그에게 소집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 덕택일까? 그는 구사일생으로 칠레를 탈출한다. 다른 이들과 달리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그에게 칠레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원체험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는 희곡 창작과 같은 저술 활동 및 강연 활동을 통해 희생당한 자들의 입이 되기로 한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칠레의 민주화가 찾아오고, 그는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상관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상관은 별 다른 감흥없이 간단히 이야기한다. '누군가 살아남아 우리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런 기구한 경험을 했던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쓴 '죽음과 소녀'라는 희곡이 있다. 역시나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군사 독재 시절 고문을 통해 입에 담기 힘든 비참한 일을 당한 빠울리나라는 한 여성이 자신에게 그런 일을 저지른 이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의 남편 헤라르도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는 더는 캐묻지 말자, 화해의 길로 나아가자고 그녀를 설득한다. 심지어 그는 새로운 정부에서 임명된 피해자 진상조사 위원회 소속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녀의 강박증때문이며, 잡힌 남자가 진짜 범인인지도 알 수 없다고 그녀를 달랜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가해자 로베르또가 진범임이 밝혀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녀는 그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혀간다. 결말은? 나중에 읽어보시길.
아무튼 이 작품을 김지씨는 '세계문학특수과제연구'라는 희한한 제목의 방과후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다뤄보고 있다. 어제 두 명의 학생이 이 작품을 주제로 수업 시간에 발표하였는데, 그때가 교사로서 김지씨에게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사실 이 경험때문에 김지씨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셈이다.
그러면 일단 수업 장면을 먼저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그래야 김지씨가 느낀 행복감의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김지씨의 방과후 수업을 신청한 학생은 총 7명이었다. 김지씨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는 이런 초소형 수업도 개설이 가능하다. 그 7명이 교사와 함께 빙 둘러앉아 이야기나눌 준비를 한다. (코로나 땜에 마스크를 끼고) 그게 수업의 기본 세팅이다.
첫 시간에는 작품을 정했다. 작품을 정할 때도 뭐 그렇게 크게 부담을 갖지 않는다. 김지씨가 읽었던 작품 중에서 흥미로울 것 같은 작품의 줄거리를 몇 개 이야기해주면 그 중에서 필이 꽂히는 작품을 골라서 학생들이 그 다음 시간부터 읽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숙제 같은 것을 내지도 않는다. 김지씨가 같이 옆에 앉아서 책을 보니, 학생들도 뭐 알아서 책을 읽는다. 발표도 뭐 특별한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담가질 것 없이 읽고 난 뒤에 자기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낭독하고, 그 이유를 한 5~10분 정도 이야기하면 된다. 그렇게 7명의 학생들이 각각 자기의 책을 골라 읽고 발표한다. 그 중 하나가 '죽음과 소녀'였다. 그 외의 다른 작품을 소개하자면,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 아서 밀러의 '시련',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있었다.
그러면 다시 발표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한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죽음과 소녀'의 줄거리를 소개하였다. 그 학생은 줄거리를 설명하다가 중간중간 인상적인 구절을, 감정을 넣어 낭독하면서 학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해석을 '조심스럽게' 소개하였다. (이 학생이 자기 생각을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소개하는 것, 그리고 그러면서 '이건 제 생각인데'라는 말을 너무 많이 했던 것은 이놈의 한국 교육이 만들어놓은 노이로제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의 학생이 발표한 내용을 듣고 작품 내용 중에 다 이야기되지 않은 부분을 두 번째 학생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어서 이야기한다. 김지씨가 경망스럽게 끼어들어 잠깐 정리하려 했다가, '샘 잠깐만요, 제가 이야기할 껀데요.'라고 해서 닥치고 조용히 학생들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머지 학생들도 주의깊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공감의 표정으로 작가와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학생들 입에서는 칠레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김지씨는 그 사이에 끼어앉아서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주고, 더 궁금한 부분들을 함께 설명해주다가 밑천이 떨어지면 같이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났다. 일정 상 어제부로 방과후 수업은 모두 끝났다. 그런데 두 명의 학생이 채 발표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시 모이기로 했다. 김지씨는 수업비를 당연히 더 받지 않기로 했다. 방과후 수업비보다 그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삶에 더 큰 활력이 될 듯 싶었기 때문이다. 아서 밀러의 '시련'이 남아있는데, 거기에 대해 또 무슨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김지씨는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까지 털어놓았던 수업 이야기에 가장 큰 반전 하나가 남아있다.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눈 학생들은 모두 고 3이었다는 점이다. 입시에 쩌들어 있다던고 3 학생들말이다. 그 고 3학생들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죽음과 소녀'를 읽고, 나누었다. 그래도 학생들과 김지씨는 모두 행복했다. 아니 그래서 학생들과 김지씨는 모두 행복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