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국어교사 김지씨 Aug 10. 2020

우무콩국의 추억

김지씨의 음식 이야기 (1)

해마다 여름이 되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음식 중에 우무콩국이 있다. '우무콩국'이야말로 경상도 사람들, 그중에서도 더 남쪽 사람들의 소울 푸드같은 음식이다. 그 지역에서는 우무를 잘게 면처럼 썰어서 콩국과 함께 후루룩 들이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 시장에서 팔곤한다. 콩국을 즐기셨던 김지씨의 어머니는 여름철만되면 집에서 손수 콩을 갈아 얼음을 동동 띄운 우무콩국을 한 대접씩 내놓으셨더랬다. 직접 장을 봐서 음식을 하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 김지씨도 여름철 시장을 지나다가 콩국과 우무를 파는 것을 보면,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끔 그걸 사들고 오고야 만다. 한번은 우무를 콩국집에서 썰어주는 걸 그대로 받아들고 왔는데, 너무 두껍게 썰어서 어렸을 때 먹던 그 식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 김지씨는 '썰어드릴까요?'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우무를 덩어리째 들고와서는 그 두텁한 손을 섬세하게 놀려 면발같이 가늘게 우무를 썰고야 만다. 탐욕스러운 눈빛과 함께 말이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이 음식을 자주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김지씨가 보기에 서울 사람들은 이 우무의 식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김지씨는 어린 시절에 그냥 일상적으로 먹었던 음식들이 서울에서는 꽤나 특이한 음식이었음을 종종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미역귀 고추장 무침, 콩잎 절임, 말린 갈치 조림, 호박잎 쌈, 미더덕찜 등등의 음식들을 서울에 와서는 거의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요리의 지역차도 지역차지만, 김지씨 어머니의 음식들이 조금은 특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세가 많으신 김지씨의 어머니는 옛날 경상도 사람들이 즐겨 먹었을 법한 음식들을 식탁에 자주 내오셨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음식, 특히 바닷가 출신이시다보니 다종다양한 해산물 중심의 음식들에 길들여진 김지씨는 희한한 종류의 해산물들을 많이도 먹었다. 비싼 걸로부터 따지성게, 해삼(해삼은 희한하게도 초간장에 물회처럼 만들어 드셨다)으로부터 시작해서, 뿔소라, 고동, 따개비, 군소, 청각을 비롯한 각종 해초류 (얘네들은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어린 시절 김지씨는 초장만 있으면 뭐든지 먹을  있었다) 등등의 해산물들을 김치와 초장 콤비와 함께 밥반찬으로 먹었었다.


물론 김지씨의 어머니가 이렇게 올드한 종류의 음식만을 만드셨던 것은 아니다. 김지씨가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나이가 되자, 아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꿀리기 싫어하셨던 김지씨 어머니는 반찬에 잔뜩 힘을 주시기도 했다. 먹는 것만은 어디까지 밀리지 말라는 게 일종의 신조같은 집안이었기 때문에(김지씨의 배를 키운 건 팔할이 어머니 식성이다), 당시에 유행한다 싶은 음식들은 다 김지씨의 도시락 반찬에 이름을 올렸다. 비엔나 소세지, 참치, 햄, 3분 요리 시리즈(이건 약간 어머니의 귀찮음이 배여있기는 하다) 등등을 김지씨는 점심 시간에 먹을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김지씨는 점심 시간에 자기 도시락을 뚜껑으로 가리는 귀한 신분이 되었다. 그 중 압권은 피자였는데, 피자치즈가 처음 선보였을 때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피자 만드는 법을 나름대로 배워서 피자를 도시락 밥 반찬으로 만들어주셨는데, 그걸 싸가는 날에는 반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히트였던 음식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김지씨 어머니에게도 우무콩국은 아주 특이한 추억을 가진 음식이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여름철이 되면 김지씨 어머니는 우무콩국을 직접 만들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셨다. 그런데 시절은 80년대요, 장소는 조그만 동네 골목이었던 터라, 콩국을 한 대접 마시더라도 혼자 남몰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명가명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어머니의 콩국을 조금씩 맛보게 되었고, 지나가는 말로 '돈주고 팔아도 되겠네'라는 덕담을 많이 던지고들 가셨다. 이것도 한, 두번이지 진심으로 어머니의 콩국을 칭찬하는 말들이 쌓이게 되자, 김지씨 어머니의 머릿 속에는 약간의 새로운 계산이 들어서게 되었다. 별로 할 일도 없고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여름 한 철만 동네 사람들 상대로 간단하게 콩국을 팔아볼까라는 생각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굼뜬 김지씨와 김지씨 아버지를 독촉하여, 콩을 사고, 불리고, 갈고, 우무를 썰고, 집 앞에 평상을 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한 그릇에 500원을 주고 팔기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동네 분들이 재미삼아 콩국 한 그릇씩 얻어 먹고, 김지씨 용돈 좀 쥐어주는 셈으로 몇 분 들르셨지만, 그 결과는 당연히 좋을 수가 없었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몇 그릇을 만들어 나누어 팔고 난 뒤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김지씨 어머니는 '골빙나서 못해묵겄다'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짧디짧았던 무허가 우무콩국 장사를 거의 하루만에 끝내 버리셨다. 그 짧았던 장사 통에 김지씨의 기억에 남은 것은 시시때때로 부리나케 열고 닫았던 냉장고 문, 쉬지 않고 콩을 갈아내느라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던 믹서기와 함께, 그래도 정말 맛있었던... 그 콩국의 맛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사와서 먹는 콩국이지만, 그때 그 맛을 다시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다. 재료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김지씨의 입맛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우무콩국을 보면, 지치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활기 넘쳤던 어머니의 옛 모습이 기억 나 코끝이 약간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런 음식들을 소울 푸드라고 하는구나라고 느끼며, 그렇게 남은 콩국을 들이마시는 김지씨였다.

작가의 이전글 이상했던 어떤 담임 선생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