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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bunch of Favorite Feb 12. 2019

나의 취미 생활 연대기

나보다 크고 무거운 드럼을 두드리게 된 이유

내 손을 거쳐간 취미생활을 얘기해 보라고 한다면 두 손을 꼽아가며 하룻밤 내내 얘기해도 모자랄지도 모른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글쓰기나 수많은 게임을 제외하더라도 캘리그래피, 다이어리 꾸미기, 영화나 드라마 몰아보기, 오카리나, 피아노, 복싱, 헤나……. 너무 많아서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가끔은 주변 사람들이 더 잘 알기도 한다. "너 그때 그거 하지 않았어?" 하면 "어, 그러게!" 하고 깨닫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취미 생활은 글 쓰기와 음악 듣기, 게임하기 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시작한 새로운 취미 생활이 바로, "드럼"이다. 드럼이라고 하면 밴드 음악에서 뺄 수 없는 악기 아닌가. 보기만 해도 멋있어서 시작했다. 원래 취미 생활의 시작은 가벼울수록 좋은 거다!




너바나의 <In Bloom>을 연주하는 데이브 그롤. 헤어스타일과 수염이 인상적이다.


물론 드러머를 생각하면 위 사진 속 데이브 그롤 같은 덩치 크고 팔뚝 굵은 백인 아저씨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드럼 셋 자체도 굉장히 클 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를 휘두르는 데 필요한 체력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본 드러머들도 키도 크고 손도 큰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밴드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드럼은 뺐던 기억이 있다. (물론 기타도 손이 작아서 실패했다. 정확히는 손가락이 짧아서.) 그리고 센세이션처럼 어떤 드러머 한 명을 만났다.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 강렬하게 휘두르면서 하드코어 메탈을 하더라. 끝내주게 멋있었다.


밴드 이름이 LaiSee였는데, 가깝고도 생소한 중국에서 활동하는 밴드이다. 사실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연부터 봤다. 중국에서 열린 유명한 락 콘테스트에서 (아마도) 우승한 밴드로 안산 록 페스티벌 초청팀이었다. 내가 본 그 어떤 무대보다 작은 무대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그들은 정말 미친 듯이 신나 보였다. (노래를 부르던 보컬이 무대 아래로 뛰어들어서 내 앞에서 놀기도 했다.) 관객도, 밴드도 반쯤 미쳐서 놀았던 그때, 무대 가장 가운데에 양갈래 머리를 휘날리던 여성 드러머가 있었다. 몸집의 다섯 배쯤 되어 보이는 드럼 셋을 휘두르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찾아볼 정도로. 그 날 헤드라이너가 푸 파이터스였는데, 푸 파이터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공연이 이들의 공연이었던 데 한몫한 게 이 드러머의 양갈래였다.


밴드 <LaiSee>의 양갈래 드러머. 아무리 찾아도 멤버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드럼 레슨을 등록하기 전까지 고민은 계속되었다. LaiSee의 드러머가 특이 케이스가 아닐까, 내 체구에 드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베이스 드럼에 다른 탐까지 합하면 드럼 무게가 나보다 무거울 텐데, 등. 그러다 복싱보단 덜 힘들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가장 가까운 드럼 연습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가서 바로 결제부터 했다! 그리고 셀프 고생길이 열렸다. 드럼은 악기 연주이면서 동시에 운동이었다.




내가 한 걱정 그대로 대부분의 드러머의 체구가 큰 데는 이유가 있었다. 베이스 드럼과 하이햇을 연주하는 데 사용되는 페달은 내 발보다 컸고,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세팅대로 하면 하이햇은 너무 높았다. 첫날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 데 둘째 날부터 보이더라. 강사님도 당황해하는 내 모습을 눈치채셨는지 "발이 페달보다 작아서 불편할 수도 있지만", "하이햇이 조금 높죠?"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물론 괜한 자존심에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어쩐지 드럼 연습실에 나만한 여자분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더라. 보다 못한 강사님이 하이햇 스프링 조절도 해 주셨다.)


거기다 체력 없는 내 비루한 몸뚱이도 장애물이었다. 첫날 두 시간 동안 리듬 연습하고 집에 기어갈 뻔했다. 베이스 킥을 연주하던 오른쪽 다리가 달달 떨렸다. 팔에 힘이 없어서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킥을 밟다 보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몸이 덜컹거렸다. 연주하다 말고 팔을 주무르는 건 일상이다.


물론 드럼은 이런 단점을 전부 뛰어넘을 정도로 재밌다! 이제 배운 지 갓 한 달 되었으면서 뭘 알겠냐만은, 재미는 알 수 있었다. 필인이나 리듬 연습만 해도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어딘가 빠져든다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드럼을 두드리는 동안만큼은 걱정도 잊고 생각 없이 리듬과 박자만 생각하면 된다.




개강까지 한 달 정도 남았으니 여유롭게 한 달은 더 연습할 수 있다. 취업 준비 대신 드럼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걱정도 하지만, 사람이 취미 생활도 없이 취업 준비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개강하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일주일에 두 번쯤은 드럼을 연주하러 다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 <나의 취미 생활 연대기>는 한 동안 드럼을 연습하는 내 일기장이 될 듯하다. 만약 글을 읽는 지금 취미 생활을 고민 중이라면, 드럼이 어떨지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생각보다 드럼 연습실은 많고 개인 레슨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홍대와 합정 근처에 거주 중이라면 드럼 스테이션으로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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