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드럼은 배우고 싶었어
나는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집순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만남 뒤에는 꼭 피로가 딸려오고, 몇 날 며칠 약속이 연이어 있다면 그 후 집안에 칩거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바깥 생활이 단순히 피곤한 일이거나 재미없는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게는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크나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일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취미생활이 집 안에서 가볍게 즐기는 일들에 그쳤다. 특히 글쓰기는 온전한 나를 즐길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취미였고, 게임은 패키지 게임을 하거나 MMORPG를 하더라도 레이드는 돌지 않고 솔플을 즐겼다. 그나마 사람들과 교류가 있는 취미생활이라고 해봤자 타로카드 정도였다. 나머지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드럼은 내게 상대적으로 예외의 경우이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보통 취미 생활이라고 하면 유튜브를 통해 혼자 익히거나, 따로 강의가 필요 없었으니 말이다. 드럼은 집에 쉽게 들여놓을 수 없을뿐더러 혼자 배우기 애매했다. 드럼 패드만 사서 연습을 할 수도 있었지만, 패드만 치기에는 재미없어 보였다. 게다가 취미로 드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멋있기 때문이었다. 이걸 포기하면 드럼을 배우려는 이유가 사라진다. 그래서 드럼을 찾아 스튜디오로 찾아갔다.
밴드에서 음악 할 생각이 있나요?
처음 드럼을 배우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 제일 먼저 물어본 말이 이거다. 드럼을 배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1) 교회에서 밴드로 활동하거나 2)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하려고 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둘 다 아니오, 이다. 무교인 내가 교회 음악을 할 리가 없었고,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내가 밴드에 들어갈 일은 절대로 없다. (많은 수의 밴드들이 싸우고 깨지는 것을 보면 더더욱 할 생각이 사라진다.)
사실 드럼 자체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라 리듬을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이다. 음악의 두 요소 중 하나만 가지고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로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드럼으로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전공자가 아니므로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 내가 연주할 리듬에는 다른 사람이 연주해 줄 멜로디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드럼 두 달 차가 갑자기 밴드에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들어가기도 싫고, 남들이 날 받아 줄 일도 없으니, 남은 방법은 딱 하나. 음원에 맞춰 연주하면 된다. 찾아보니 취미로 드럼을 배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연습하곤 하는 것 같았다. 실제 사람들과 합을 맞추며 연주하는 것도 재밌겠지만 나에겐 음원으로 연습하는 방법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드럼을 연주한다고 해서 굳이 밴드와 함께 할 필요는 없다. 선생님과 나만 있다면 충분하다.
물론 '선생님'조차 불편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강사님과 좁은 방에서 단 둘이 있을 어색한 시간이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강사님도 그 시간을 꺼려한다는 점이다. 정말 딱 필요한 만큼 배우고 나서 나 혼자 연습하면 그만이다. 혼자 드럼에 몰두하고 있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간다. 옆 방에서 연습하는 소리도 잘 안 들릴 때가 많다. 어차피 드럼 소리가 크기 때문에 제대로 연주한다면 내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종종 내가 연주하고 있는 박자로 다른 드럼 소리가 들려서 헷갈리긴 하지만.)
밴드 음악에 많이 쓰이는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드럼 자체의 큰 소리 때문에 '나 혼자'의 느낌이 강하게 날 때도 있다. 드럼 솔로가 점점 더 화려해질수록 기분도 좋고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느낌 때문에 뿌듯해질 때도 있다. 아직 두 달 차 꼬꼬마 드러머지만, 앞으로 계속 배우다 보면 더 신나게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런 설렘과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이 취미생활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Eye of the Tiger>를 연주할 수 있는 그날까지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