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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Oct 05. 2023

조왕신은 어디에

코카서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 사내가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다. 그는 제우스를 속이고 사람에게 꺼지지 않는 불을 전해 준 신이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를 보내준다.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준 바로 그 여자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인류에게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행의 씨앗도 키운 것이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를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가 만든 불이 인류를 삼킬 것이라며….

동양에는 어떤 불의 신이 있을까? 중국 신화에 염제(炎帝)가 있다. 불의 신이고 농업의 신이며 의약의 신이다. 그는 ‘불의 샘’인 판천(阪泉)을 관장하며 불이 필요한 신이나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한편, 변방에 있으면서 판천을 호시탐탐 노리는 인물이 중국인의 시조로 불리는 황제(黃帝)다. 곤륜에서 힘을 기른 황제는 염제의 덕이 부족하다는 명분을 앞세워 판천을 공격한다. 중국 신화에서 ‘판천대전(阪泉大戰)’ 혹은 염황대전(炎黃大戰)이라고 표현하는 중국 최초의 큰 전쟁이다. 이 싸움에서 이긴 황제는 자기에게 복종하는 신이나 사람에게만 불을 나누어 주었다. 이때부터 불은 이권화되었고 세상은 혼탁해졌다.


우리에게도 화덕진군(火德眞君)이라는 불의 신이 있었다. 그의 본성은 착하나 성격이 몹시 급했다. 그가 화를 내면 불길이 일어나고 주변의 모든 것을 태운 다음에야 꺼졌다. 그야말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결국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한 화덕진군은 하늘에서 땅으로 추방됐다.


프로메테우스와 황제에게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오늘날 정치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익이 있기만 하면 생각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서도 자칭 ‘지도자’라고 뻐기는 인사들 말이다. 공자는 정치를 하려면 우선 나 자신부터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했다(論語, 顏淵篇). 국민을 평안하게 해야 하는 정치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는 지도자나 정치인이라기보다 차라리 선동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그들이 세상을 더 혼탁하게 드는 지도 모르니까….

거칠고 가식적인 불의 신만 있을까?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신이 있다. 바로 조왕신(竈王神)이다. 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조왕신은 ‘불의 신’이면서도 집안의 재액을 막아 주고 가업이 번창하도록 도와주는 가택신(家宅神)이다. 우리 곁에 있으면서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을 주어서 어머니들이 공경한 신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매일 아침 부뚜막에 정안수(井華水, 조왕물이라고도 한다) 떠 놓고 조왕신에게 치성을 올렸다. 또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공을 들였다. 집을 옮길 때는 조왕신부터 모시고 나갔고, 새로운 집에 들어갈 때도 조왕신을 가장 앞에 세웠다. 부엌에서는 불을 때며 악담하지 않았고,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지 않았다. 부엌에 머무는 조왕신을 공경하는 마음의 표시다.


세상의 이목을 모으려고 피운, 스스로 제어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불은 필요 없다. 프로메테우스나 화덕진군의 불처럼 온 세상을 다 태워야 꺼지는 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어디에나 있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왕신의 불이면 된다. 조왕신 같은 그런 정치인이라야 국민도 저절로 존경하게 될 것이다.



*** 가택신 : 모든 집에 존재하며 가족 구성원을 보살펴 주는 신으로 성주신, 조왕신, 수문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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