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전해오는 신데렐라는 줄거리가 비슷한 이야기가 500여 개라는 말도 있고 1,000개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한마디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신데렐라류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는 의미다.
신데렐라는 계모와 이복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예쁜 아가씨다. 이런 품성 덕에 신데렐라는 요정의 도움을 받아 유리구두를 신고 화려하게 치장된 호박 마차를 타고 왕자가 이끄는 궁중 무도회에 참석한다. 마법이 풀리는 자정이 가까워지자 신데렐라는 도망치듯 무도회장을 떠나다가 유리 구두 한 짝을 남겨 놓는다. 왕자는 유리구두의 주인과 결혼하려 하고, 이를 안 이복언니들은 발뒤꿈치를 칼로 잘라내며 신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우여곡절 끝에 신데렐라는 왕자를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다.
신데렐라는 누구일까? 신데렐라(Cinderella)는 항상 부엌 아궁이 앞에서 재(Cinder)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엘라(Ella), 즉 ‘재투성이 소녀 엘라’ 혹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엘라’라는 의미다. 귀한 신분의 여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로는 매춘부에서 왕비가 된 고대 이집트의 ‘아름다운 로도피스’를 꼽는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가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비잔틴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도 원래는 매춘부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실존 인물 외에도 이탈리아의 ‘체네렌톨라’, 프랑스의 ‘샹드리용’ 등의 이야기도 신데렐라와 비슷한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가 유럽에만 전해올까?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는 물론 중국의 ‘예셴(葉限)’, 베트남의 ‘떰과 깜’, 일본의 ‘누카후쿠와 고메후쿠’ 등도 비슷한 구조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쯤 되면 신데렐라는 시대와 지역을 떠나 전 세계에 두루 전해지는, 어쩌면 인류의 보편적 소망이 담긴 이야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전 세계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신발이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잃었다가 왕자와 결혼하고, 중국의 예셴은 금색 슬리퍼를 잃었다가 젊은 왕을 만나 결혼한다.로도피스는 독수리가 신발 한 짝을 낚아채 아마시스 왕의 무릎에 떨어뜨린 인연으로 왕비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콩쥐는 꽃신을 잃었다가 부인과 사별한 나이 든 감사와 결혼한다.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발이 남녀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무슨 까닭일까?
신발은 좌우대칭 형이고 2개가 모여 하나가 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예로부터 신발을 남녀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투탕카멘 의자 등받이에 왕은 왼발에, 왕비는 오른발에 한 짝씩 신발을 신고 있는 그림이 있다. 한 켤레의 신발을 나눠 신은 모습을 통해 결합을 상징한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도 신발은 주인공의 정체를 밝히는 역할을 하고 왕자와의 사랑을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었다.
민속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신발을 성(性)의 상징으로 본다고 한다. 맨발은 남성의 성기, 신발은 여성의 성기를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즉 신발에 발을 넣고 빼는 행위는 성행위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두와 직결된 여성의 발 크기가 갖는 성적 함의도 보여준다. 발 크기가 여성 성기의 크기라고 생각했고, 작은 발을 가진 여인을 미인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남긴 신발을 신으려고 이복언니들이 발뒤꿈치를 자른 이유이고, 중국에서 전족(纏足)이 생겨난 배경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발과 함께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불행한 주인공이 능력 있고 귀한 신분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룬다는 점이다. 경제 능력이 거의 없던 여성이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의미다. 시대와 지역은 달라도 세계 각국의 신데렐라들 앞에는 예외 없이 젊은 왕이나 왕자로 상징되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분 상승을 이룬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 신데렐라를 질투하던 계모와 언니는 왕자가 없는 틈을 타서 그녀를 죽이고 의붓언니를 신데렐라로 위장해서 왕자를 속이려 한다. 왕자도 위험해졌다고 생각한 신데렐라는 유령이 되어 밤마다 왕자의 잠자리를 지키다 날이 밝으면 사라졌다. 베트남의 ‘떰과 깜’에서도 계모와 이복동생인 깜의 음모로 떰은 죽고 만다. 우리나라의 콩쥐는 어땠을까? 콩쥐 역시 팥쥐가 꾸민 계략으로 연못에 빠져 죽고 만다. 억울하게 죽은 떰과 콩쥐는 꽃으로 환생하여 깜과 팥쥐에게 복수는 했지만 어렵게 얻은 행복을 안타깝게 잃은 다음이다. 혹시 서양의 변덕스러운 운명의 신 포르투나나 우리나라의 오늘이가 신분 상승을 시켜주고 난 뒤 갑자기 질투심이 생겨 심술을 부린 결과일까?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고 경제적 능력이 향상되면서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단장’하는 종속적 여인보다는 적극적으로 삶을 끌고 가는 여성이 늘었다. 예전에는 신데렐라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백마 타고 싶은 왕자’가 신데렐라를 찾아다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나 콩쥐의 꽃신은 이들의 운명을 또 어디로 데려갈까? 포르투나나 오늘이가 더는 심술을 부리지만 않아도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