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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Dec 26. 2023

돌아올 수 없는 곳

인생이라는 자동차는 후진 기능이 없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뿐인가?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더니 나이를 먹을수록 가속도마저 붙는 모양이다. 어머니의 삶도 그랬다.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긴 지 1년 반이 넘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옮긴 지 넉 달이 넘어간다. 집에서 모실 때보다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요양원에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속도가 빨라질 줄 알았더라면 집에서 모실 때 좀 더 잘해드릴 걸…. 번거롭게 한다고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마구 큰소리를 지른 게 후회되고, 그 후회가 이제는 응어리가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의 면회를 허락받고 병실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늘 그렇듯 비위관(일명 콧줄)을 코에 꽂고 표정 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길이 따라온다. ‘아, 아직 의식이 있으시구나.’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소리에 대한 본능적 반응인지 아니면 알아차려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알아차렸다고 믿을 뿐이다.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살며시 잡았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손가락이 제멋대로 구부러져 있다. 며칠 전에 다 펴놓고 왔는데 그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어머니의 손바닥을 내 손바닥 사이에 끼워놓고 천천히 힘을 주었다. 반듯하게 펴지라고…. “아퍼, 아퍼!” 하며 짧은 말만 반복했다. 긴 대화가 불가능해진 어머니가 내는 유일한 말소리다. ‘아직 감각도 살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예전처럼 ‘아퍼, 이눔아!’라고 고함을 지르지 못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 씻기고 돌봐줄 자식들이 다 자랐으니 미련을 버리고 가실 곳으로 가세요. 혹시 아버지가 꿈에 나와 손을 내밀면 그 손 꼬옥 잡으시고요.”


전래동화 「콩쥐 팥쥐」의 원형인 「콩데기 팥데기」가 있다. 계모와 팥데기의 학대에서 벗어나 사또와 결혼한 콩데기는 예쁜 아기를 낳았다. 행복이 시작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계모와 팥데기가 음모를 꾸며 그녀를 연못에 빠트려 죽인 것이다. 젖도 떼지 못한 아기를 두고 저승에 도착한 콩데기는 눈물로 지새웠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생각한 저승의 지배자 대별왕은 밤에만 이승으로 돌아가서 아기를 돌볼 수 있게 허락해줬다. 


아기의 할머니는 엄마가 죽었는데도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깨끗한 옷에 단정한 머리를 한 아기를 보며 의문을 느끼고 밤에 숨어서 지켜봤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콩데기는 평소처럼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씻기는 등 동이 틀 무렵까지 아기 곁에 머물다 사라졌다. 다음날 밤. 시어머니는 다시 나타난 콩데기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기가 다 자랄 때까지 돌아가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와 함께 저승사자가 집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가시나무로 울타리와 지붕을 모두 뒤덮었다. 


날이 새도 콩데기가 돌아오지 않자 화가 난 대별왕은 저승사자를 보내 그녀를 잡아 오게 했다. 가시나무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저승사자는 굴뚝으로 올라가 ‘콩데기, 콩데기, 콩데기’하며 그녀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이름을 불린 콩데기의 혼은 몸에서 빠져나와 굴뚝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저승사자는 즉시 붉은 오랏줄로 콩데기의 혼을 묶어 저승으로 끌고 갔다. 이때 이후 사람이 죽으면 몸은 이승에 남고 혼만 저승으로 불려가게 됐다. 몸을 잃은 혼은 다시는 이승에 올 수 없게 되었고…. 이승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콩데기는 시어머니를 원망했고, 시어머니는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떠난 콩데기를 욕했다. 이 일로 인해 고부 갈등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면회를 마치고 병실을 나서니 눈앞이 뿌옇다. 어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 콩데기가 떠오른 이유는 뭘까? 힘드시더라도 이승을 떠나지 말고 나를 돌봐달라는 응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미련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라가라고 속삭인 것은 또 무슨 모순된 행동인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 저승인데, 그런 곳으로 어서 가시라고 등을 떠민 내가 무섭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죽은 자의 세계에서 왕이 되느니 비참한 노예로 살더라도 산 자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라고 했는데…. 아는 이 하나 없는 병실에 홀로 누워있는 어머니가 눈에 걸리고, 콩데기 시어머니처럼 가시나무로 병실을 뒤덮지 못하는 내가 너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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