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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an 14. 2024

내가 쓰고 내가 연기하는 아주 짧은 드라마 (4)

신체연극과 행동연기


「언덕의 바리」, 두 번째 관람


첫 번째 관람 때보다는 줄거리가 조금은 더 이해됐다. 배우들의 행동연기가 익숙해지자 줄거리가 조금 더 이해된 모양이다.  바리는, ‘언덕의 바리’는 하늘도 버리고 땅도 버린 사람이라고 했다. 연극에서 바리는 우리가 아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표현됐다. 그 바리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사람을 태워주는 뱃사공인 모양이다. 경신에게 배에 오르지 않을 거냐고 묻자 그녀는 나중에 타겠다고, 언덕을 떠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살을 돋게 하고 피가 흐르게 하는 꽃이 있는 언덕에 머물겠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신화에 나오는, 온갖 기화요초가 자라는 ‘서천꽃밭’이 떠올랐다. 바리의 배가 떠있는 곳은 강이 아니라 ‘헹기못’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모두가 우리 신화를 교묘하게 드러내는 장치인 듯하다.


신화학자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언덕의 바리」 소책자에 기고한 글에서 ‘언덕의 바리’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지옥은 식민지에만 있는지, 식민화된 조선, 식민화된 여성, 식민화된 자연에만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안경신의 뜨거운 심장은 폭탄이 되어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생명수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반문했다. 그의 질문처럼 ‘언덕의 바리’는 어디에 있을까?



독특한 형식의 연극, 「언덕의 바리」


「언덕의 바리」는 무대배치도 특이했지만 연극 자체도 내겐 생소했다. 배우들은 대사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무대 위에서 움직였다. 다양한 자세로 서로 스치며 지나가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하는 등 마치 전위 예술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이런 방식이  ‘신체 연극’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배우들이 제스처, 표정, 자세 등을  통해 인물의 심리나 상태 그리고 감정을 구현하는 연극이다. 연극이 진행되는 120분 동안 배우들은 대사 한 마디를 할 때도, 동작 하나를 할 때도 쉬지 않고 온몸으로 분위기를 표현했다.


같이 관람했던 친구가 ‘쉴 새 없이 꿈틀대고,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은 때로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행동하는 몸동작이나 가수들이 노래하는 목소리에서 아주 가끔 생생한 날 것의 감정이 느껴질 때도 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조금은 이해되는 듯했다.


이런 연기를 하려면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특히 경신과 명희가 하나의 외투를 빼앗아 번갈아 입으며 대사를 하는 과정은 압권이었다. 두 배우는 이 장면을 연습하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그들은 힘들었겠지만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행동연기를 지향하는 ‘극단 동’


「언덕의 바리」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극단 동’ 소속이다. 러시아 슈우킨대학으로 연극 유학을 떠났던 이들이 1999년에 러시아에서 창단한 극단이다. 그들은 러시아에서 공부했지만 전설적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기법을 넘어 우리 식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창단했다. 대단히 혁신적이고 공격적인 극단이 탄생한 셈이다.  ‘극단 동’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이자 모토는 동(動)이다. 움직임이다. 그들은 극단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월요연기연구실’도 운영한다고 한다. 작품을 올릴 때마다 이곳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움직여 보며 피드백을 받는다고 한다.


 


이처럼 치열하게 연구하고 연기하는  ‘극단 동’에 대해 어느 연극평론가는 이들 ‘‘연기를 한다’의 ‘한다’는 것을 연구한다’라고 평했다. 말장난같이 들리는 이 말이  ‘극단 동’을 이해하는 핵심어가 아닐까? 쉽지 않은 이들의 연극, 이해하려면 서너 번쯤은 관람해야 비로소 가능할 듯하다.


 ‘극단 동’이 지향하는 행동연기



연극이 끝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된다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면서 용과는 “연극도 봤으니 이제부터는 연습을 빡세게 할까요?”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설마 ‘월요연기연구실’에서 그들이 했던 연습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겠지?  그렇게 하려면 체력이 부칠텐데 어쩌나.


그동안 용과는 마치 놀이를 하듯 수업을 진행했다. 긴 직사각형 안에 몇 개의 장애물을 설치하고 한 사람이 손뼉으로 신호를 보내어 다른 한 사람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유도하는 놀이도 그중 하나였다. 혹시 이런 연습이 ‘월요연기연구실’에서 만들어진 것 중의 하나일까? ‘극단 동’에서 잔뼈가 굵은 용과에게 연기 수업을 받으려면 그들의 치열함을 흉내라도 내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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