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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n 02. 2024

언제쯤 철이 들까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부족한 게 하나둘 나타난다. 우선 겉옷이다. 계절에 맞는 옷이 마땅치 않았다. 다음에는 신발이다. 걷는 시간이 많으니 발이 편한 운동화가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모자도 있어야 하고, 배낭도 필요했다. 떠오르는 대로 적고 보니 제법 많다. 인터넷으로 품목을 조사했다. 좋은 세상이다. 다리품 대신 손품이나 눈 품을 팔면 되니 말이다. 일단 맘에 드는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자 합계 금액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생각보다 큰 금액이다. 여행 경비도 만만치 않은데….


지출을 줄이려고 목록을 다시 한번 살폈다. 모두 집에 있는 것들이고 평상시 외출할 때마다 입고, 신고 쓰던 것들이다. 대부분 멀쩡했고 최근에 산 것도 있는데 공연히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목록을 보며 급하지 않은 것, 멀쩡하게 집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지웠다. 지우다 보니 하나도 남지 않았다. 안 사도 되는데 남에게 좋게 보이려고 불필요한 소비를 할 뻔한 것이다. 이 물건들을 살 때도 요모조모 살피고 샀을 텐데 그걸 까마득히 잊고 새로 살려는 심리는 무엇일까? 허세일까 아니면 ‘보여주기’ 심리일까?


‘허세의 본질은 허세를 부리는 사람도 그 허세에 만족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소비에 만족하면 그것은 허세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 지인에게 들은 일화 하나. 골프를 즐기는 젊은이들 가운데, 특히 여성 골퍼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운동하면서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고 한다. 골프를 즐기기보다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게 더 큰 목적인 셈이다. 그런 행동에 만족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허세다.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에 ‘플렉스(flex)’라는 말이 있다. ‘과시하다’, ‘자랑하다’라는 뜻이다. 자신들의 사치성 소비가 알려지는 것에 부담스러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기 과시 혹은 보여주기’를 상징하는 단어다. 남들에게 보여주려다 보니 인스타그램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려고 골프장에 가고, 비싼 오마카세를 즐기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오마카세’를 검색하면 나오는 61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바로 ‘보여주기’의 전형이 아닐까? 어느 전문가는 플렉스가 ‘현재 경제생활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는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젊은이들의 내적 불안감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그의 판단이 맞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은 경제생활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보여주기 소비를 한다고 해도 나는 왜 그러려고 했을까?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며 옷가지 등 불필요한 것을 정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필요하지도 않은 새 옷, 새 신발을 또 살 생각을 했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 삶을 관조할 만도 한데 아직도 허세를 부리려 하고, 남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다니…. 헛되이 나이만 먹었을 뿐 철이 들려면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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