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벌초를 해주던 사람이 이번에는 어려우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는 연락을 해왔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것이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했으니 나이 칠십을 넘겼으면 아픈 데가 생길 만도 하지. 그나저나 벌초해 줄 사람을 어떻게 찾지? 고향 친구들에게 적당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해야 하나? 평소에는 연락도 자주 안 하다 아쉬운 일이 생겨서 전화하기엔 미안하고…. 갑자기 답답해졌다.
인터넷에 ‘부여 벌초 대행’이라고 입력했다. 기대했던 대로 수많은 연락처가 나타났다. 부여에 소재지를 둔 곳은 물론, 인근 도시, 심지어는 전국적 영업망을 갖춘 회사들까지 다양했다. 우리 사회가 무척 촘촘하게 짜였음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원하든, 어떤 도움이 필요하든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부여에 있는 업체에 전화했다.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뢰내용을 얘기하자 주소와 위성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위성사진? 위성사진을 어떻게 보내냐고 물으니까 젊은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주변에 젊은 사람이 없다고 하자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60대 중반이라고 대답하자 자기는 70대 중반이라며 “사진을 케챱해서 보내면 돼요. 나도 할 수 있는데 젊은 사람이 그걸 못해요?”라며 힐난 아닌 힐난을 했다. ‘케챱?’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색했다. 잠시 후에야 ‘캡처’를 잘 못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 지도에 들어가니 위성 지도로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평소 잘 이용하지 않던 것이어서 낯설었을 뿐이다.
그의 요청대로 사진을 케챱(?)해서 보냈다. 이어서 작업 일정이 맞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곳에도 전화했다. 역시 주소와 위성사진을 보내달란다. 이처럼 널리 이용되고 있는 기능을 나는 낯설어하다니…. 이러다가 컴맹 소리 듣기 십상이겠다. 처음에 얘기한 대행비는 30만 원이었다. 그 금액이 현장 답사 후 50만 원으로 뛰었다. 주변 나무도 전지해야 하고, 접근도 쉽지 않아 금액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무 전지는 빼라고 하자 그래도 35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했다. 일단 보류하고 두 번째로 통화했던 사람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도 현장을 방문한다고 했기 때문에.
두 번째로 통화한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상통화 하자고 했다. 그는 산소 주변을 보여주며 맞느냐고 물었다. 작업 범위에 대해서도 영상으로 보여주며 확인했다. 벌초 대행하는 시골 촌부라고, 나이 든 사람들이라고 우습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핸드폰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다툼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핸드폰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외려 내가 컴맹이었고, 단순 사용자였다.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 끝을 논한 격이다. 이렇게 우스운 꼴이라니….
그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작업을 마무리한 사진도 여러 장 보내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의뢰자가 현장에 같이 있는 것처럼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믿음이 간다. 깔끔하게 작업이 끝냈다. 벌초가 끝나고 나자 새삼 조바심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를 잘 아는데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