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결혼했다. 덕택에 손주 자랑하는 친구들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이 손주 홀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요즘 결혼식은 자식들이 모두 준비하고 부모들은 손님처럼 참석만 한다더니 내 경우도 그랬다. 날자, 식장, 진행 내용 등 모든 준비는 아이들이 주도했다. 필요한 경비도 자기들끼리 마련하고 꼭 필요한 것만 부모와 상의했다.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왠지 뒷방 늙은이가 된 느낌도 들어 친구들에게 불만을 얘기하니 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라며 통박만 받았다.
결혼식에는 양가 형제들과 아이들의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했다. 아이들을 잘 알고,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작은 결혼식’이다. 집안 어른들의 불만은 컸다. 결혼은 당사자의 단순한 결합만이 아니라 집안의 결합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북적이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야 집안의 위신도 선다며 못마땅해했다. 어떤 인척은 ‘찾아가 축하도 못 해서 당혹스러웠다.’라며 결혼식에 참석 못 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젊은 사람들의 결혼에 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예전엔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자 사회적 통과의례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사랑은 관계이고 결혼은 제도’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함께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결혼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을 해도 자기 계발, 취미, 여행, 반려동물 키우기 등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인생의 완성’이 아니라 ‘선택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라는 인식이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예전에는 경제적 안정이 결혼의 전제조건이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완벽하진 않아도 마음이 편한 사람을 사람’을 더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각자 통장, 각자 공간’과 같이 결혼 후에도 경제적 자립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해졌다. 더 나아가 법적 혼인보다 사실혼, 비혼 동거, 파트너십 계약을 택하는 사례도 흔해졌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결혼제도를 불신한다기보다 관계의 진정성을 제도보다 우선시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예식 또한 변하고 있다. 스몰 웨딩, 셀프 웨딩 또는 여행 목적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데스티네이션 웨딩(Destination Wedding) 등 자신만의 스타일로 결혼식을 치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넓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는 ‘보여주기식 결혼’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이가 많아진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을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 중심의 ‘따뜻한 예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세월은 결혼뿐만 아니라 이혼 풍속도도 바꾸어 놓았다. 최근 이혼한 부부가 함께 나와, 재산을 나누고 서로의 소지품을 정리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우리 세대에게 결혼이란 서로의 인생을 묶는 약속이었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곧 의리이자 책임이었다. 그래서 이혼은 부끄러운 일, 가능한 한 감춰야 할 일이었다. 젊은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결혼을 ‘함께 성장하기 위한 선택’으로 봤는데 그 선택이 의미를 잃으면 미련 없이 끝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그들에게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인 것이다. 예전의 세대가 ‘함께 견디는 것’을 사랑이라 믿었다면, 지금의 세대는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을 사랑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혼조차도 예능의 소재로 삼는 시대.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결혼관이 바뀌었다고 해도 낯설다. 아이들에게 상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지키고, 건강하게 살아서 회혼(回婚)을 넘어 백혼, 천혼까지 함께 하라는 덕담을 주었다. 세태가 바뀌고 생각이 변해도 우리 아이들은 변함없이 사랑하고, 오래 함께하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