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투표가 반쪽으로 끝났습니다. 재외국민 유권자의 절반가량이 영향을 받은 투표 중지에 대해 공론화가 된 것은 독일 교민 탓이 큽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선관위의 투표 중지 결정 직후 반응을 살펴보니 반발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다른 특파원들에게 유럽 각국의 반응을 모아보자고 발제했습니다.
독일 교민사회와는 달리 영국 교민사회는 '아쉽지만 이해한다'는 반응이 대체적이었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 독일의 코로나19 확산사태로 2주 만에 처음으로 하루 쉬는 토요일 휴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교민들의 메시지와 메일이 왔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투표 절차 재개' 또는 '대안으로 거소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관위와 대사관 측의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는 메시지들도 받았습니다.
기사화를 했고, 본격적으로 투표 중지 문제에 대해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이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교민분이 지면 및 방송 매체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곧이어 화가 덜 풀린 교민분들이 민변과 손을 잡고 헌법소원 및 투표중지 조치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내겠다고 해서 기사화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발이었습니다. 이 역시 반향이 꽤 있었습니다.
보통은 헌재로 가는 게 대부분 논쟁의 마지막 단계라 이제 끝났나 생각 상황의 마지막이라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1인 시위를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틀간 1인 시위가 이뤄졌습니다. 70대 교민분들도 참여했습니다. 독일과 확산이나 일상 통제 상황이 비슷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은 야외 투표 등을 실시한 것에 더 뿔이 났습니다.
재외투표 중지 문제는 독일과 한국 간의 항공길이 끊기면서 선관위와 대사관은 고민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이미 일부 교민분들은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확산 및 방역 과정을 매체를 통해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독일 정부의 한심한 대응, 시민과 언론의 안일한 인식을 보면 '지옥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이에른주에서 이동제한령이 내려지자 일부 교민분들은 선관위와 대사관이 바이에른주 정부와 협의해 선거를 위한 이동을 예외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사관에서도 교민들의 상대로 분위기를 파악했을 겁니다. 아마 투표 중지를 해도 교민들의 반발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결국 선관위에서 재외국민 투표 중지에 대한 무성의한 내용의 메일이 당도했습니다. 저도 내용을 보곤 좀 황당했습니다. '뭐야~' 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제가 말씀을 들어본 교민분들도 선관위의 메일 내용에도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반발의 불씨는 이 메일이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분이 일부 '목소리가 큰' 교민들의 반발인데, 왜 이리 기사를 크게 썼느냐는 식으로 불평을 해왔습니다. 그것도 베를린을 제외하고는 반발 움직임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수의 교민은 불만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취재하는 과정에서 교민을 몇단계로 세분화했습니다. 독일 교민은 이민 역사와 동서독 분단의 역사 탓에 다른 유럽 교민사회와 정치적, 연령별로 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어르신들 경우에도 성별로 정치적 성향에 온도 차가 꽤 난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중앙 한인회 등 공식화된 단체 몇곳의 분들, 200명 가까이가 가입된 30∼40대 젊은 층 직장인 그룹, 프리랜서 그룹, 예술계, 유학생 커뮤니티, 공대 유학생, 40대 이민 맘, 한국계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대부분 비판적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목소리가 큰' 분들이 직접적으로 운동을 펼친 것이지요. 물론, 별다르게 반응이 없던 그룹도 있었습니다. 30∼40대 직장인 그룹에서 관련해 의견을 펼친 분들은 대부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의사를 나타냈지만, '안전'과 '외교문제 비화 방지' 등을 내세우며 선관위를 옹호한 분도 있었습니다.
혼자 파악한 데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못했지만, 대사관이 여러 영사관을 통해 파악한 한인사회 여론보다 더 세분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취재 과정에서 목소리가 크지 않는 한 교민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외교 문제가 아니고 참정권, 선거 사무라 그런 건가. 상대국을 배려 이전에 자국민을 배려하고 상대국을 끝까지 설득하려 했다면, 실패했어도 교민들이 이해했을 것 같은데…."
이 지점에서 진실은 아무도 모르긴 합니다. 선관위와 대사관은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일테죠. 교민과 선관위·대사관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지점입니다. 계속 그럴 것입니다.
하여튼, 이제 독일 교민의 이번 총선 투표는 물 건너갔습니다. 저의 권리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 봅니다. 어떻게 해서는 투표가 이뤄졌다고 가정해봅니다. 요즘 독일 언론과 정부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높게 평가합니다. 이제서라도 일부 한국식 방법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만약 투표가 이뤄졌다면 독일 언론에서 이런 기사가 나올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야외투표·2m 거리 바닥 테이프…우려 날린 한국식 모범투표>, <투표장서 한국교민들 면마스크·소독제 나눔…바이러스 밀폐 투표>
한국이 더 홍보됐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