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맞는 순간에도 직접 보고 동영상 찍어도 된다고 하셨는데, 아플까 봐 쳐다보질 못했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접종 순간에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주삿바늘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서 놀라서 흘끗 왼팔을 바라보긴 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접종이 끝난 나는 이 알 수 없는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홀을 나가기 전 대기 구역 의자에 다시 앉았다. 15~20분 정도 경과를 보고 나가면 된다고 하는데, 나는 30분이나 앉아 있었다. 백신 접종카드까지 챙겨 홀을 나오는 기분이란! 큰 임무를 하나 완수한 느낌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어깨가 조금씩 뻐근해진다는 느낌 외에는 집에 와서도 별반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백신을 맞고 나니,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게 락다운이 완전히 풀리는 연말이 오기 전에 미리 일정부문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기사가 떴다. 백신 접종자에 대한 혜택에 대해서는 5월부터도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표나 기사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정부에서 가능성을 명시한 것은 처음이었다. 백신은 두려웠지만 나와 사회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말레이시아에서의 작은 자유로 이어질 수 있다니! 가슴이 새로운 설렘으로 뛰었다. 작년 1월에 쿠알라룸푸르에 온 이후 2월부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제대로 된 쿠알라 라이프를 즐기지 못했다. 주변 국가로 여행 가기 좋은 지리적 이점은 고사하고, 말레이시아 내부 다른 주로 여행도 자주 갈 수 없었다. 그래도 사바 주에 살면서 바다를 많이 본 것이 다행이었던 시간이었다. 락다운을 했다가 풀었다가 반복했었지만 2달을 넘기지 않았는데, 올해 5월 초부터 해서 벌써 3개월째 락다운이 지속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약간의 자유라도 준다면 백신은 내게 해방의 열쇠가 되는 거였다. 물론 여전히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까지 하고 다닐 거지만, 10km 이동제한이나 식당 내 식사만 풀어줘도, 아니, 거리제한만 풀어줘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이유로 백신 접종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백신의 여파가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왼팔과 가슴이 뻐근한 정도였다. 점점 왼팔의 통증이 심해지더니, 심장이 뛰는 건지 낮의 긴장이 남아있는 건지, 잠이 오기는커녕 정신이 쌩쌩했다. 동시에 미열이 조금 나는 느낌이었고, 점점 몸이 피곤했다. 준비했던 방수밴드를 붙이고 간단한 샤워를 끝내고, 물을 전투적으로 마신 뒤, 쿨 패치를 이마에 붙이고 누웠다. 잠들기 전이 되자 왼팔을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뻐근했다. 이대로 내일 눈을 뜨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잠깐 한 뒤, 에이 별일이야 있겠어 하며 잠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