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해외 회사에서 죄책감 없이 병가 쓰는 법

당당하게 아플 권리 가끔은 누려도 괜찮지 않을까

by 하루단

9화. 해외 회사에서 죄책감 없이 병가 쓰는 법


'고열 출근은 일상'

'10명 중 7명 아파도 유급 병가 못 쓴다'


요즘 볼 수 있는 기사 제목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를 돌아보면, 병가를 썼던 적이 거의 없었다. 몸이 안 좋아도 어떻게든 출근했었다. 진짜 크게 아파서 앓아눕지 않는 이상 병가를 쉽게 쓰는 분위기도 아니었거니와, 아파서 쉬는 것이 민폐라는 생각을 너도나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외 회사를 다니면 다를까? 100% 죄책감 없이 당당하게 병가를 내놓고 마음 편할 수는 없지만, 병가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정말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야 병가가 가당치 않은 분위기였지만, 여기서는 로컬 분들이 비교적 편하게 병가(유급병가)를 쓰는 분위기라, 2~3달에 한 번씩 병가를 쓰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게 사실이다. 당일 아침에 아프다고 연락하고, 클리닉 가서 레터 한 장만 받으면 된다. 처음엔 K-직장인으로서 신기하다 못해 이상했고, 병가 신청할 때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었다.


'아니...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병가를 써도 되는 걸까...?'

'감기가 좀 심하기로서니 병가를 써도 되는 걸까?'

'이렇게 당일 아침에 그냥 통보하고 늘어져서 자도 되는 거야?'

'병가 쓰면 욕먹지 않을까?'


초기에는 끊임없는 자기검열로 인해, 여전히 아파도 꾸역꾸역 출근했다. 꽤 많이 아픈데도 출근하는 날이면, 동료들은 출근한 나를 나무라곤 했다.

"아니 이렇게 아픈데 회사를 왜 나왔어요?"

"감기 옮기겠네~~~ 쉬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반차로 병가 내는 게 어때요."



아픈 거 옮기면 그게 더 문제라면서, 그리고 힘든데 왜 굳이 고생고생 나오냐며, 집에 가라고 등 떠밀어준다. 이 정도는 번아웃 만렙에게는 식은 죽 먹기인데(속으론 안 괜찮지만 꾸역꾸역 회사 나가기) 새삼스럽기도 하고 고마웠다.


심지어 어떤 로컬 친구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농담 삼아 새로운 해석을 전했다.

"병가가 14일이면? 14일만큼 휴가가 더 있는 거지."


'???'

물음표를 입으로 뱉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스들이 알면 기절할 농담이기는 하지만, 직원의 입장에서는 이런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고 신기했다.


심지어 아프지 않은데 급한 일정을 위해 병가를 쓰는 경우도 꽤 많다. 물론 아프지도 않은데 병가를 남용하는 것은 해외라도 아주 안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것은 동일하며 잦은 병가는 성과/인사 평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진짜 아플 때 쓰는 병가가 좀 생겨도 정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파도 송구한 죄인의 마음으로 조아리며 병가를 기피했던 과거의 내가 본다면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아프면 병원 가고 하루이틀 쉬고, 과로로 지치면 하루 병가 내고 약 먹고 잠만 자도 되는구나. 큰 질병이 아니어도 병가를 써도 되는구나. 내가 나를 지켜도 되는구나. 나를 아껴도 되는구나.'


정말 딱 이 감각이었다. 나 자신을 지키고 아껴도 된다는 감각,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을 때 가끔 쉴 수 있다는 안도감, 그 안도감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너무 많이 힘들 때, 끙끙 앓으며 출근하지 말고, 아플 땐 나를 보살피며 가끔은 당당하게 병가를 써도 괜찮지 않을까. '고열 출근은 일상'이라는 한국 뉴스 기사가 종종 보일 때마다 안타깝고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르지만, 많은 개복치님들이 자신을 잘 챙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고 스스로 몸을 더 아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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