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일하는 방송사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다른 방송사에서 일하는 작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피디가 할 일까지 작가가 하는 경우가 많다. 뭐 그런 희한한 동네가 있냐고 물어보니 워낙 오랜 세월 관행처럼 이어져 오다 보니 그쪽은 그게 당연하게 굳어진 분위기라고 했다. 어느 직장이나 그들만의 직장문화라는 것이 있듯이 같은 라디오 작가라도 방송사에 따라 작가의 업무가 달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원고'다. DJ가 원고까지 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원고는 작가의 영역이다. 늦어도 방송 30분 전까지는 따끈따끈한 원고가 출력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지역 라디오는 한 프로그램에 보통 한 명의 작가만 있다. 메인작가 따로, 자료조사 따로, 그건 TV 프로그램이나 서울에 있는 방송사들 얘기고 지역 라디오의 현실은 그렇다. 문제는 몸이 안좋을 때다. 갑자기 아파서 도저히 원고를 쓸 수 없을 때 누군가가 대신 써줘야 하는데 누구에게 말을 할까? 남의 프로그램 원고를 쓴다는 건 꽤 부담되는 일이다. 그것도 갑자기 부탁을 하면 더욱더 말이다. 그래서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누워서라도 써야 하는 게 바로 원고다.
얼마 전에 크게 체해 구토와 열이 심각했다. 머리도 깨질 것처럼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도 그 와중에 '원고를 어쩐다'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친한 작가 동생에게 부탁을 할까까지 생각을 했지만 부담을 주기 싫었다. 결국 게보린과 훼스탈을 입에 털어놓고 책상에 반쯤 누워 겨우 원고를 썼다.
좀 비약을 하자면 내 몸이 아픈 것보다도 원고가 더 걱정되는 것, 그것이 바로 라디오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