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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옷 Feb 06. 2019

'누군가'의 ‘밋밋한’ 여행

사실 확인을 하러 온 게 아닌데


“여기가 맛집이래.”     

          



만약 내가 뉴욕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1. 네이버를 켠다.

2. 뉴욕+n박 코스, 뉴욕 일정

3. 뉴욕+숙소

4. 뉴욕+맛집     


순으로 검색하는 거다. 뉴욕이 아니라 어디를 여행해도 마찬가지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여행을 가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네이버에 ‘여행지+n박 코스’, ‘여행지+숙소’, ‘여행지+맛집’ 검색부터 할 거다.      


여행코스를 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볼 건 다 들어가 있으면서 동선도 고려해야 한다. 적절한 관람시간과 일정을 고려하는 걸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의 여행 준비를 하며 척척 해내는 건 당연히 쉽지 않다. 그래서 남들은 어떻게 가는지 찾아보게 된다. 참고해서 일정을 짜면 그래도 좀 나으니까.     


여행 준비를 할 때, 솔직히 블로그만 한 게 없다. 지도 세계에서 로드뷰가 나오고 신세계를 느낀 것처럼(!) 사진으로 보여주는 여행 블로거의 생생한 후기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과정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다 찍어두어서 처음 간 여행지여도 본 대로 따라만 하면 다 할 수 있을 정도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만 검색해도 공항에 나와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뭐가 좋은지 장단점도 잘 적어두었고,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 사진도 있다. 쭉 따라가라는 말을 따라 가면 정류장이 보이고,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도 다 적혀 있다. ‘여기서 타는 줄 알았는데 실은 여기였던 거 있죠?’라든가 ‘배차간격이 이런 줄도 모르고 한참 기다렸어요.’라든가 ‘정류장에 왔는데 티켓은 안쪽에서 미리 사는 거였어요! 다시 돌아가서 티켓 구입해왔습니다ㅠㅠ’라는 슬픈 실패(?)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에겐 유용한 팁이 되기도 한다.     


요즘만큼 여행 정보를 얻기 쉬운 시대가 있을까. 블로그만 언급했지만, 블로그뿐만 아니라 각 나라별로 운영하는 관광청을 통해, TV나 영화를 통해, 가이드북은 물론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나 어플까지. SNS도 그렇다. 인스타그램에 지역으로 검색해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면 구글에 주소를 검색해서 찾아갈 수도 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은 무궁무진하고, 여행자들의 평점이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된 사이트를 포함해 로컬들의 기록까지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꼼꼼히 여행 준비를 마치면, 이제 여행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구글 지도에 미리 맛집이나 카페들을 저장해놓고 그때그때 가기도 하고, 그게 아니어도 미리 골라놓은 식당 리스트를 보며 찾아간다. 혹시나 메뉴 이름을 까먹거나 제대로 주문하지 못할까 봐 맛있다고 한 메뉴 사진을 캡처해서 직접 보여주며 주문도 한다. “이걸로 주문해주세요!” 그런데 미리 캡처해둔 사진과 똑같은 음식이 내 앞에 딱 나올 때, 맛이 있건 없건 어느 순간 ‘나는 지금 무슨 여행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 거다. 꼭 내가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 확인을 하러 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ㅇㅇ맛집, 진짜 맛있어!” “ㅇㅇ 존맛 식당 후기” “ㅇㅇ에서 찾은 인생 메뉴” 같은 글을 보고 똑같이 주문하면, ‘그러게. 진짜 맛있네.’와 ‘이게? 맛있다고?’, ‘맛있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다’ 정도의 감상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기분이다.      


여행지 동선도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가는 게 제일 좋다는 말을 따라서 가는데, 대부분 맞다. 하지만 길이 꼭 그 길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동행이 “이렇게 가도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말을 해도 “이렇게 가래. 그래야 빠르대.”로 굳어버린다. 다른 방법이나 선택지는 없어진다. 모르는 길을 가는 건 어쨌거나 위험이 있고, 남들이 한 번은 해본 방법대로 가는 건 안전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도장 깨기’가 되는 것 같고, 이것마저도 수학 공식처럼 처리되는 느낌이다. A에 갈 땐 B를 타고 C에서 D로 이동한 후 걸어가고, A를 다 보고 나면 근처 E 집에서 식사를 한다는 매뉴얼을 따라 하고 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흔히 패키지여행을 하면 ‘진짜 여행이 아니다’, ‘진정한 여행의 감흥을 느낄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상 패키지여행과 다른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정을 내 마음대로 짤 수 있다고 해서 정말 ‘자유’ 여행이 맞긴 한가 싶은 거다. 명소를 찾아가서 사진 찍고 다시 차에 올라타는 게 수동적인 느낌이라서 감흥이 없다고 말한다면, 블로그 코스대로 가이드북 코스대로 그대로 따라서 가는 건 능동적인 건가?


수동적이라는 표현이 너무 과격하다면, 평면적인 여행이라거나 밋밋한 여행 정도라고 쓰자. 비슷비슷한 코스에, 누군가의 추천 코스를 따라 평면적이고 밋밋해진 여행이라고. 그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내가 짠 내 여행 코스고, 내가 가기로 결정한 곳들인데 이상하게 피노키오가 된 기분. 여행이 아니라 소개한 곳이 진짜 좋았는지 아닌지, 진짜 맛있었는지 아닌지 평가하고 인증하는 기분. 내 여행이 아닌 ‘누군가’의 여행을 ‘따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은 기분 탓이 아닐 거다. 느끼는 재미의 최대치라봐야 ‘진짜 그렇네’라는 동의가 전부인 밋밋한 여행이 감흥이 있을 리가. 간 곳에 별점 매기고, 타인의 감상에까지 별점을 매기는 게 전부겠지.


다음 글은 ‘모두의 취미, 여행’과 자물쇠 효과와 여행에 대한 글입니다. 여행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와 속물적인 여행지 선택 등이 차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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