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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옷 Jul 19. 2019

나를 무뎌지게 만드는 나 혼자

혼자 떠나는 여행의 단점을 부정하지 않기








“이렇게 좋은데 혼자 와서 어떡해요?”




혼자 출장을 가게 되면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 밥을 많이 먹게 된다. 여행 기사라고 해서 온전히 혼자 쓰는 기사는 거의 없다. 트레킹과 하이킹을 포함해서 유적지를 간다거나 마을을 간다거나 하다못해 카페를 가도 도움 설명을 해주실 분들과 함께 취재한다. 그래서 한 끼 정도는 지자체 주무관님이나 문화관광해설사님 등 동행한 관계자분들과 함께 식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 식사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점심이야 취재 중간인 경우가 많아 함께 먹지만,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 같은 경우는 거의 혼자 먹는다. 시간이 촉박해 못 챙겨 먹거나 너무 피곤해서 숙소에 미리 김밥이나 샌드위치, 햄버거를 사놓고 먹는 경우도 있지만, 트레킹이나 하이킹 전에 밥을 잘 챙겨 먹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아침부터 백반집에 가는 일도 적지 않다. 어떤 코스들은 분명 점심때 제대로 못 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왠지 억울한데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 나는 뭘하고 있는 걸까 허탈함+억울함 100배)


문제는 혼자 식사하는 상황이 아니라 혼자 밥을 먹는 나를 안쓰럽게 보는 주인을 만날 때다.


대도시에선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지방 출장 중 좀 외진 곳을 가게 되면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다. 해남에서는 겨우 아침에 문 연 백반집에 갔는데 (쇠락한 마을이라 식당이 손에 꼽았고, 아침에 문 여는 백반집은 하나뿐이었다) "혼자 먹는 게 좀 그럴 건데, 앞에 앉아 있어 줄까?" 라고 물어서 나를 다른 의미로 당황하게 했다. 모르는 사람이 앞에 앉아서 먹는 걸 빤히 지켜보면 그게 더 불편할 것 같은데, 너무나 선의로 물어서 ”하하... 괜찮아요....혼자 잘 먹어요;;;” 하고 어색하게 밥을 먹어야 했다. 바로 앞에 앉진 않았지만 바로 뒤 식탁 의자에 앉아 여전히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서 밥을 먹는 건지 인터뷰를 당하는 건지(?) 모를 경험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좋은데 혼자 와서 어떡해요?”


이 질문은 정말 몇천 번은 들은 것 같다. 일할 때마다 백이면 백 안 들었던 날이 없었다. 해설사님이나 주무관님이나 아무튼 관계자분들 모두 남자친구랑 와야 하는데 혼자 와서 어쩌냐며... 다음에 다시 오라고 말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넉살 좋게 받아치는 방법도 여러 버전이 생겼는데, 뭐 기분이 나쁘진 않다. 정말로 혼자서 보기 아까운 순간들이 많으니까. 아마 나 혼자 여행을 했어도 '혼자 보기 아깝다' 혼잣말을 백 번이나 했을 순간들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혼자 떠나는 여행에  자연스러워진다. 일단 휴가를 맞추기도 어렵고, 주변도 다들 여행을   다녀와 보니 가고 싶은 여행지를 맞추기도 어렵다. (보통은 가본  대신  가본 곳을 다음 여행지로 고르는 경우가 많고, 이미 갔던   호불호가 서로 다르기도 하니까) 여행지에서 무엇을  것인지 함께 정하는 것도  피곤하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혼자 비행기를 끊는 쪽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혼자 하는 일들을 잘하는 편인데, 애초부터 그런 성격으로 태어났다  이런  아니고, 그냥 ‘하고 싶다  크기 때문에 같이 하면 좋지만 ‘혼자서라도 할래 마음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좋다. 무엇보다 나를 마주 볼 수 있다. 종종 여행에 대해,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해 물으면 나는 나에 관한 ‘마주보고서’라고 말하곤 했다.


뭐 먹고 싶어? 어디 가고 싶어? 이 중에 뭐 하고 싶어? 그런 질문들에 나는 자주 ‘아무거나’ 대답하곤 했다. 취향이 없다기보단 가장 하고 싶은 걸 고르고 나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이 사람을 단단해지거나 말랑하게 만든다면,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 이외엔 아무래도 괜찮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타협이라면 타협이다.


하지만 혼자서 여행할 땐 ‘아무거나’가 안 된다. 뭐든,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라고 해도 그것마저도 선택이다. 그러니까 여행을 하며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내가 오래 있고 싶은 곳에서 오래 있을 수 있고, 생각보다 별로라면 그 자리에서 나와 다른 일정을 할 수도 있다. 늦잠이 자고 싶으면 자고, 식당이 가고 싶으면 식당에 가도 된다. 성당에 가만히 앉아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해도 좋고, 오르간 연주에 빠져도 좋다. 조금씩 해가 이울어질 때부터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카페나 성당에 앉아 여행의 상념을 노트에 오래도록 적어 내려가도 상관없고, 다리가 아프다 못해 발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시가지를 걷고 걸어도 된다. 원하는 포인트가 잡힐 때까지 한자리에서 사진기를 들고 기다려도 된다. 눈치 볼 상대가 없다는 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나를 마주 봐야 하기 때문에 그에 익숙치 않으면 당연히 속 시끄럽고 불편한 일이긴 하지만 그건 그만큼 나에 대한 훈련을 못한 탓이니 누구 탓을 할 것도 없다.




어렸을 때는 혼자 하는 여행의 단점에 대해 기어코 인정하지 않으려고 굴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의 단점도 분명히 있다. 내가 느끼는 단점은 두 개다. 식당에서 음식을 여러 개 시킬 수 없는 것과 좋은 순간을 온전히 혼자서만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순간을 ‘감당’해야 한다고 표현한 건, 정말로 너무나 압도적인 좋음이라서다.


여행을 다닐수록 점점 말을 잃는다. 어떤 묘사나 비유도 정확하게 그것을 그려낼 수 없다는 언어의 무력함을 느낀다. 내 능력이 부족한 건 더 큰 이유지만, 카메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다. 사진도, 동영상도 어느 순간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결국 감흥은 그 순간을 함께 한 이 말고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 더 적확하게 말하면, 함께 하고 있는 이와도 완벽하게 공유되지 않는다. 여행은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같은 곳을 여행 갔어도, 순간은 동일하지 않아서 그저 유사할 뿐 같지 않다.


어렸을 때는 혼자 하는 여행의 단점에 대해 기어코 인정하지 않으려고 굴었다. 장점이 더 많은데? 라고 필사적으로 방어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온전한 어른이고, 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더 나아가 ‘나이가 몇 살인데 혼자 못 가?’라며 오히려 상대를 힐난하는 투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감흥 없는 여행에 대해 쭉 써보자고 마음 먹었던 것도 기본적으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무조건 ‘좋다’고 포장하는 것에 반감이 생겨서였기 때문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단점이 분명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감흥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혼자 하는 여행에서 내가 본 것이 정말 아름다웠음을, 여행이 정말 행복했음을, 그 순간이 더없이 완벽한 순간이었음을 반증해줄 사람이 나뿐이라는 소리다. 여행의 감상까지 인증과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혼자 온전히 감흥을 더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외로워지는 구석이 있었고, 그래서 재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분명 좋지만, '좋음' 다음에 외로움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나를 덮치는 그런 순간.


고요할수록 밝아지고, 선명해지는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기억들을 함께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여행의 감흥도 분명 있다. 이건 그냥 서로 다른 범위의 감흥이라서, 혼자 떠나서는 어떻게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인 거다. 산에 가서 바다 여행의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소금에선 소금의 맛이 나고 설탕에선 설탕의 맛을 얻는 것 같은 그런 성질의 문제다.


야구를 볼 때도 투수전은 혼자 봐야 재밌고, 빠따전은 같이 봐야 더 재밌듯이, 어떤 여행들은 함께 해야 더 감흥이 일어나고, 감흥이 오래오래 유지되는 여행도 있다.  


뭐, 그리고 좀 더 솔직해보자.


혼자 여행을 가면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때보다 말할 상대가 없으니 말수도 적어지고, 표정도 당연히 좀 덜해진다. 표현할 상대가 없으니 감정표출의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박 개미쳤다" 하고 주접 떨 상대가 없으니 속으론 방방 뛰어도 겉으로는 고요~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게 된다. 아니면 너무 미친 사람 같잖아! 물론 여행 처돌이는 미친 게 맞지만. 표현이 줄어들면 아닌 것 같아도 감정의 폭을 좁힌다. 감정이 무뎌지면 감흥도 조금 무뎌질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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