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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옷 Jan 24. 2019

로컬처럼 여행하기에 대한 환상 1

‘처럼’의 그럴듯함


‘로컬처럼’ 여행하는 게 ‘진짜’ 여행일까?


  혼자 로마를 여행하던 중에, 여행하는 중이냐고 누군가 물었다. 어디서 왔냐, 로마에는 며칠 있었냐, 뭐뭐를 봤냐 그런 흔한 여행자들의 스몰토크를 하다 그가 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가 로마에 있는 거 알아?” 그 말에 나는 바티칸도 모를까 봐 그러냐고,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답했는데 그는 보란 듯이 ‘모르는 게 맞다’며 웃었었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떠나서 사전 정보도, 가이드북도 없는 대책 없는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몰타 기사단 자체를 몰랐다. 지금은 유명한 것 같은데 10년 전에도 유명했나? 사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여행을 했으니까, 아마 10년 전에도 유명했을 거다. 아무튼 나는 몰랐던 몰타 기사단에 반신반의하며 따라갔다. 웬 초록 대문 앞에서 열쇠 구멍에 눈을 들이대고 보라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뭐가 보이는데 이걸 보라는 건지 싶었다. 그의 재촉에 작디작은 열쇠 구멍에 눈을 갖다 댔는데, 열쇠 구멍 사이로 정원이 보이고, 그 정원 끝에 바티칸 시국이 보였다. 와. 그때만 생각하면...! 미쳤다를 연발하며 세상에 이런 포인트가 있는지 몰랐다며 네가 없었으면 나는 로마에서 최고로 스페셜한 곳을 몰랐을 거라고, 어쩌다 나를 이런 곳에 데려와줬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어쩌다 어떻게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 여행 중에 재미난 경험이 많았는데,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이게 바로 여행의 맛이라거나, 이게 바로 여행의 재미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싶은 거다. 이건 그냥 ‘운’이고, 나에게 좋은 추억일 뿐이지, 이 경험들로 특별히 ‘진짜’ 로마를 본 건 아니다.


  이건 마치 그런 거다. 술에 취했을 때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뒷모습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다? 민낯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뭐 이런 말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전부 다 나잖아! 비유라는 걸 알지만, 알아도 딴지를 걸고 싶어 지는 거다. 왜냐면 ‘로컬’과 ‘뒷골목’ 들이 ‘진짜’ 여행이라고 염불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 중에 꼭 이런 사람, ‘뒷골목 예찬론자’들을 만나게 되니까 말이다. 이름만으로도 대충 예상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어낸 말이니까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뒷골목 예찬론자들은 현지인들이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 이들은 여행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설사 여행자들이라고 한다면, 절대 한국인 이어선 안 된다. 외국 사람들이어야 하며, 여행자들이라고 해도 매우 소수의, 아무튼 현지인들이 대다수여야 한다. 이들은 현지인들만이 아는 식당,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카페에 간 걸 아주 좋아한다. 현지인들의 대접을 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이들에겐 가장 좋은 여행의 추억인 것 같다. 명소만 찾는 여행은 이들에겐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인다. 이들의 입버릇은 '진짜 여행'이다. 진짜 여행은 이런 데에서,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야.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진짜가 뭔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니. 뒷골목 예찬론자들은 정말 엄청난 능력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들은 로컬처럼 여행하기가 정답이라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생각을 주입한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여행자가 늘고, 정보도 넘쳐난다. 그런데도 (혹은 그래서) 여행은 점점 획일화되어 간다. 겉핥기식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경험은 시간의 길이와 어느 정도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 경험의 시간을 갖고 있는 로컬을 만나는 건 어쩌면 행운이다. (물론 그들의 소개가 내가 원하는 것에 맞는지 여부는 차후의 문제지만, 극심한 뒷골목 예찬론자들은 그게 무엇이든 로컬의 소개를 값진 경험으로 바꿔내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행운이 없어도 실망할 게 없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구를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 자본주의는 ‘로컬’을 이미지화해 여행산업으로 끌고 와 로컬 여행과 로컬 맛집도 상품으로 치환시킨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고 광고하는 에어비앤비가 앞세우는 ‘여행 가서 현지인처럼 살아보기’는 대표적인 여행산업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로컬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은 다양하다. 자체 개발한 로컬 여행 코스, 로컬들이 직접 가이드가 되는 서비스, 로컬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 로컬 맛집을 서치할 수 있는 사이트·어플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해외여행에만 이런 것들이 있냐고? 우리나라의 ‘시골’을 이미지화해 여행 상품으로 만들고, 경험을 판매하는 플랫폼들이 우리나라에도 많다. 농촌이나 어촌마을까지 가지 않아도 전주나 인사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같은 것 역시 같은 범주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밸런스다. 뒷골목 예찬론자들은 ‘적당히’ ‘포장된’ 로컬의 경험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이건 마치 꼬리잡기 같다. 뒷골목 예찬론자들은 오직 자기만 경험한 더 특별한 로컬의 경험을 갖고 싶어 하지만, 몇몇 경험들은 또 다른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 로컬들을 위한 시장이 아닌 관광객들을 위한 시장이 된 것처럼. 그러면 여행업계는 주변의 다른 스폿을 찾아 ‘숨겨진’ 로컬들의 공간을 소개하고, 더 로컬스럽게 가공화된 경험을 판매하려고 노력한다.


  여행기자로서 여행지를 소개하는 몇 가지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은 잘 모르는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기존의 잘 아는 여행지를 새로운 시선, 새로운 여행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꼭지명은 이 중 하나다. ‘진정한 ~를 만나는’, ‘남들은 모르는’, ‘아는 사람만 아는’, ‘로컬들만 아는’, ‘숨겨진’, ‘~에서 만난 ~의 민낯’ 뭐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도 로컬의 기준이 무엇인지, 로컬 콘텐츠가 무엇인지, 로컬 가이드나 로컬 맛집, 로컬 여행의 기준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건, 남들도 아는 것이라는 거다. 그게 ‘나만의 경험’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여행이든, ‘내’가 하는 여행은 당연히 ‘나’의 경험이다. 그게 뒷골목 여행이든 명소에 갔든 말이다. 로컬처럼 여행하기의 맹점은 여행의 주체가 ‘나’가 아닌 ‘로컬’에 맞춰진다는 사실이다. 로컬처럼, 로컬처럼, 로컬처럼 여행하면 ‘나’는 어떤 여행을 하는 거지? 애초에 일반화할 수 없는 ‘로컬’을 기준화해서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이 어떻게 될까? 여행책이나 블로그에 나와 있지 않은 현지인이 가득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거나 전통 시장을 들러 그들의 삶을 보는 것이 보는 것이 ‘진짜 여행’인가? 로컬들의 삶의 단면들을 여행의 경험이나 기념품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게 여행의 감흥이면 정말 감흥 없다. 동물원에 동물원 구경 가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여행의 ‘진짜’에 연연하는 순간, 그럼 그 외의 모든 순간들은 진짜가 아닌, 감흥 없는 순간이 되어버린다. ‘그럴듯한’ 경험이야 말로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만으로도 부족해서 다음 글 역시 '로컬처럼 여행하기에 대한 환상 2 - 로컬도 모르는 로컬 맛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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