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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옷 Feb 03. 2019

로컬처럼 여행하기에 대한 환상 2

로컬들도 모르는 로컬 맛집



  “제주가 고향이야?
그럼 나 이번에 제주도 여행 가는데 제주 맛집 알려줘!”



  내가 여행기자로 일할 당시, 우리 팀엔 제주도가 고향인 기자가 있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제주도 여행을 갈 때마다 제주 맛집 좀 알려달라고 했다. 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지 그는 약간 포기한 얼굴로 “맛집 잘 몰라요”라고 말하곤 했다. “저도 SNS에서 보고 ‘이런 곳이 있어?’하고 놀라서 찾아가요”라며 우는 소리는 덤이다. 그래도 한두 개만 알려달라고 하면 항상(내가 들을 때마다) 두세 개 정도의 맛집을 추천해주었다. 하나는 횟집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하나는 고기집, 나머지 하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즐겨먹던 분식집이었다. 횟집은 기본으로 두 시간은 줄 서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고, 고기집도 아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집일 거다. 분식집은 나도 처음 들었는데 갈 일이 없어 못 가봤다. 아무래도 제주 여행을 가서 그 친구가 다닌 고등학교 근처를 갈 일은 없으니.


  여행기자가 되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부동의 TOP3는 “어디가 좋아?” “여기 가면 뭐 해야 돼?” “여기 가면 뭐 먹어야 돼?” 이거다. 여행지 추천과 여행 코스 추천, 맛집 추천. 사실상 여행은 이게 끝인데, 왜! 다 퍼먹여달라고 하지! 아무튼 그 중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맛집이다. 그럴 때마다 나도 내가 간 곳 중 맛있었던 곳을 추천하지만, 모든 사람의 입맛과 취향은 다르고, 그 날 그 날 땡기는 건 다르기에 내가 맛있었던 곳이 남들에게도 맛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괜히 추천해줬다가 ‘별로던데?’ ‘넌 거길 맛집이라고 소개하냐?’ ‘거기 줄이 너무 길어서 먹기 힘들더라’ ‘거기보다 ㅇㅇ이 더 유명한 곳 아냐?’ 등등의 말을 듣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구구절절 추천하는 이유를 덧붙여 설명하게 된다. ‘A가 제일 유명하지만 오래 기다리기 싫을 땐 B도 나쁘지 않다’라거나 ‘난 맑은 국물이 더 좋아서 I보다 J집이 좋더라고’라거나 ‘지역 특산물은 Y지만 원래 Z를 좋아하면 그 집이 Z를 잘하니까 가보라’는 식이다. 그나마 내가 자주 가는 곳이라면 내 입맛에 맞았던 집을 소개하지만, 솔직히 촬영차 하루 이틀 다녀온 곳에서 맛집을 추천하는 건 좀 그렇다. 물론 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자는 마음에 찾아보고,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고 가지만 솔직히 그보다 더 맛있는 집도 많을 테고 내 추천에 100%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니 그렇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 역시 여행을 가면 “너 혹시 이 근처에 맛있는 식당 알아?”하고 자주 묻곤 한다. 미리 찾아보는 게 귀찮기도 하고, 여행 일정이 없는 상태에서 맛집만 검색하게 되면 동선이 꼬이기 때문에 계획을 잘 못 짜는 나는 그때그때 물어서 먹는 편이다. (‘무조건 여긴 갈 거야’라며 여행의 목적이 한 레스토랑인 경우 제외) 호텔에서는 보통 컨시어지들이 맛집을 표시해놓은 지도를 주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투숙객들이 자주 묻기 때문에 예산이나 선호 메뉴를 물어본 뒤 그에 맞게 대응해준다. 주변 카페에서 주문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며 묻기도 한다.


  취재 때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후보를 추려서 가긴 하지만, 해당 지역 주무관이나 만나게 되는 문화관광해설사님을 비롯해 만나는 이들에게 꼭 맛있는 식당을 물어본다. 내가 찾아간 식당 목록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평을 묻기도 한다. 가끔 ‘그 집이 유명해?’라며 놀라 자기도 한번 가봐야겠다며 알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그 집이 유명은 한데 맛은 별로다 or 위생이 안 좋다 or 너무 줄이 길다’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나는 당연히 그들이 정해준 정보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다 모르는 식당들. 확률은 반반이다. 대부분 맛있는 식당들이지만, 소름 끼치게 맛있었던 적은 몇 번 없었다. 물론 맛없는 식당도 있었다. 대체 무슨 입과 혀를 가졌는데 여기가 맛있다는 거야...?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로컬 식당이라고 다 맛있을 리가 없다. 그건 여행의 ‘기분’ 같은 건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특히나 해외여행에 가면 영어 메뉴판이 있는 곳은 가지 않는다며 로컬 식당에 가야 어쩌고 저짜고 하는 사람들을 어김없이 만나기도 하는데 진짜 맛있어서 그런 건지, ‘분위기’를 사랑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향신료는 둘째치고 신기한(?) 맛이거나, 누가 먹어도 맛없거나,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맛의 음식을 먹으면서 역시 로컬 식당에 와서 먹어야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하는 순간 예의 그 뒷골목 예찬론자 필터에 질린다. 한국인이 없는 것과 음식의 맛이 무슨 소용인지. 로컬 식당과 맛있는 로컬 식당. 그 차이겠지.


  애초에 로컬들만 가는 맛집,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 가이드북은 소개해주지 않는 맛집 같은 수식어는 좀 어폐가 있다. 내가 검색해서 얻을 수 있는 ‘로컬들만 가는 맛집’은 이미 다른 사람도 검색해볼 수 있는 법이다. 게다가 로컬들이 그 동네 식당을 전부 다 가보고 채점한 게 아닌 걸. 나만 해도 이 동네에 거의 10년을 살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식당 몇 개가 있을 뿐 어디가 제일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내가 가보지 않은 식당 중 맛집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동네 최고 맛집은 다 북적인다. 사람들은 맛있는 건 기막히게 안다. 매일 북적이지만 그래도 가끔 운 좋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으면 그 날은 그 식당에 가는 날이다. 하지만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이번에 안 가면 못 간다. 줄을 서더라도 먹어야 한다. 특히 해외여행은 실패가 더 무섭다. 단순히 맛없는 걸 먹었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것이니까. 돈도 쓰고, 시간도 썼는데 그럼 안 되지. 그래서 더 열심히 로컬 맛집을 찾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맛있는 걸 먹고 싶으니까 안전하게 가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래서 여행이 점점 재미없어진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것 때문에. 여행은 내가 모르는 세계의 내력을 읽는 일이다. 풍경이든, 음식이든, 역사이든, 사람이든. 그런데 남들이 맛있다는 맛집에 가서 정말 맛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가는 일이 재미있을리가.


  그래서 다음 글은 가이드북과 파워블로거들을 따라 실패 없이 그리고 감흥도 없이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로컬처럼 여행하기에 대한 환상에 대한 연장선이기도 하고, 정반대편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라는 주체 대신 ‘로컬’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름 믿을만한(?) ‘가이드북’과 ‘파워블로거’를 취사선택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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