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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바다 Jul 27. 2021

진심이 통하지 않는 순간

양궁 금메달리스트 오진혁을 바라보며

올림픽 시즌이라고 남편은 집에서 내내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어제는 우리나라 양궁 남자 단체 금메달을 딴 날이었다. 물론 나는 운동 경기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다. 남편은 신이 나서 술을 한잔 걸치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오진혁이라는 선수가 진짜 멋있었어. 결승 3세트에서 마지막 활시위를 당기면서 ‘끝’ 이러는 거야.”

“끝? 그게 무슨 말이야?”

“과녁에 화살이 맞기도 전에 한 말이야. 그 선수는 명중할 줄 알았던 거야.”      




오늘은 풀리지 않는 도서 콘셉트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편집자가 만든 다른 작가의 책은 다 괜찮아 보이고, 역시 저렇게 잘된 이유가 있어 보이고, 지금 나만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무기력해지고 그에 따라 한없이 내려오는 눈꺼풀을 방어하는 데 안간힘을 쓰는데, 문득 어제 들은 오진혁 선수 생각이 났다.

그는 마흔 살 궁사였다. 사람 어깨에는 회전근이 넷이라 하는데, 그중 셋이 끊어지고 하나만 남았다 한다. 남은 하나도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번 올림픽에 나온 것 자체가 기적으로 보였다. 그래도 양궁장에 있어야 ‘사는 맛’이 난다고, 어린 후배와의 경쟁도 즐겁다고 한다. 어제 말로만 들었던 ‘끝’ 영상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마지막 활시위를 당기고 ‘끝’이라는 확신에 찬 말을 내뱉으려면 어떤 지경이어야 할까. 그 말은 10점일 줄 알았다는 말이다. 엄청난 연습으로 그런 감이 쌓였을 것이다. 혹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10점에 맞지 않아도 된다. 왜냐면 정말로 후회 없이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미친 듯이 열심히 책을 만들어서 출간 직전에 판매 부수를 확신하는 상황인 거다. 이제 끝났네, 이 책은 잘되겠네, 그러는 거지. 지금 나는 내가 맡은 책의 콘셉트조차 잡지 못하고 허우적대는데 (게다가 이런 일이 매번 반복되는데) 언제 확신에 찬 그 말을 내뱉어 볼 수 있을까. 어깨 근육이 끊어질 정도 매일을 무언가에 바치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런 집요함과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나올까.     




어쩌면 나는 책 만드는 일에 진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심이 통하지 않는 시기가 온다. 쌓인 시간은 실력이 증명해 줄 테다. 마흔이 몇 년 남지 않은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편집자는 모든 책에 진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진심에 호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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