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부천까지 편도로 한 시간 반을, 10년 넘은 빨간 마티즈를 타고 달린다. 이제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차를 사야지 하면서도 가계 사정을 생각해 망설이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냥 사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안 된다고, 돈을 모아야 한다고 짐짓 단호하게 굴었다. 그러고서도 또 차 이야기만 나오면 고민하기를 수십 번…. 남편 생일이라고 친정에 미역국 얻으러 갔다가 또다시 차를 살까 말까 고민이라고 했다.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돈 천만 원 줄게. 이거 보태서 그냥 사.”
나는 화들짝 놀라서 됐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결혼할 때 엄마가 못 도와줬잖아. 내가 준다고 그러면 그냥 받아. 너무 딱 잘라서 무 자르듯이 하는 것도 부모 자식 사이에 정 없어.”
마음이 복잡했다. 결혼 전에 엄마가 예단 이불을 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막상 이불을 보러 갔더니 백만 원이 훌쩍 넘더라.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와서 내가 조금 결제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엄마는 말렸다. 내가 돈을 내겠다고 나섰던 것은, 엄마가 돈을 쓰는 방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이 절대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가면, 엄마는 옷 하나를 사도 가게 열 군데는 들락거렸다. “돌아보고 올게요.” 이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어린 나는 말했다. “엄마, 왜 다시 올 거라고 해? 다시 안 올 거잖아.” 엄마가 그런 나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 중학교 때 생각도 났다. 그때 아빠는 트렁크 위에 날개 모양의 막대가 달린 중고 프라이드를 끌었는데, 그 차로 매일 아침 엄마와 나를 각각 공장과 학교로 데려다주었다. 어느 날 트렁크 위 막대가 부러지자 아빠는 별생각 없이 그 막대를 노란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이어 붙였다. 그걸 본 엄마는 공장 몇십 미터 전부터 화를 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내려줘. 나 걸어가게.” 그 뒤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 엄마는 지금껏 공장에서 일한 돈을 탈탈 털어 준중형 승용차를 하나 뽑았다. 그 승용차를 아직까지 타고 있다.
요즘 엄마는 식당에서 일한다. 천만 원이면 백만 원씩 열 달을 꼬박 근무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을 받으면 엄마의 열 달을 받는 것만 같아서 미안하다. 내가 아는 한, 정말로 엄마는 돈을 허투루 쓴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주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되면 자식을 그저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엄마의 시간이란 어떤 걸까. 늘 같이 살 때는 몰랐던 마음들이 거리를 두니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꿈을 꾼다. 흠 하나 없는 반짝거리는 새 승용차에 엄마를 태우고 달리는 꿈을. 우리 딸네는 차도 좋지. 뿌듯해하는 부모님을 태우고 우리는 숲으로 소풍을 떠난다. 그래, 꼭 그럴 거라고. 엄마가 날 사랑하는 만큼 내가 엄마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랑을 잊지 않으려 늘 애써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