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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바다 Apr 26. 2021

오전 8시

편집자가 문제가 아니라 내 자존감이 문제다

       

오전 8시.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연락해 봤어. 혹시 같은 상황이면 연락 줄래? 그렇지 않다면 그냥 무시해도 괜찮아.     

이것은 나의 연애에서 또 하나의 ‘흑역사’가 될 터였다. 헤어진 이유는 정말 심플했다. 만난 지 두 달 반 정도 된 남자 친구에게 결혼을 하자고 말해 봤는데, 한참을 고민하더니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여자 친구가 결혼을 하자는데 고민을 한다고? 허, 이놈도 텄구나! 며칠 시간을 달라고 하는 그에게 나는 딱 하루가 지나서 전화를 걸었다. 이런 식으로 다그치면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기에 그럼 헤어지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왠지 헤어지지 않은 듯한 마음에 (아쉬움이 남아서) 문자를 한 거였다. 

내 생각에 오전 8시의 문자는 왠지 새벽에 보내는 문자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굳이 말하자면 오전 8시가 더 이성적인 시간으로 보였다. 새벽 1시의 문자는 술 먹고 연락한 것 정도로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오전 8시는 아침 근무를 위해 깨어 있는 매우 냉철한 시간이 아닌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굳이 문자를 보냈으니 그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랐다. 

물론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날의 오전 8시가 퍽 이성적인 시간이었다면, 그보다 예전에 어떤 날의 오후 8시는 감성이 흘러넘치는 자기 연민의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그 사람은 여덟 달쯤 만났다. 그에게 어떠한 신뢰가 없었음에도(그 사람이 결혼할 만한 남자는 맞는지, 그 사람이 나와 결혼할 의사가 있는지) 그때도 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은 결혼 생각이 없다는 그 당연한 말에 나는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절망했다. 아예 연락을 끊어 버리기로 했다. 평소 연락 문제로 속 썩이던 놈이었으니 그대로 연락을 끊어 버려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결심해 놓고 안절부절했다. 사실 많이 좋아했고 별로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서로의 니즈가 달라서 앞으로도 괴로울 것이니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헤어지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퇴근한 뒤 어느 역 환승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나는 한참 동안 통곡을 했다. 자꾸 결론은 이상한 쪽으로 났다. 이 남자가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내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나는 가난하다. 집안이 가난하면 돈이라도 잘 벌어야 하는데 나는 출판사 다닌다. 그 사람 연봉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니 내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안정적인 공무원이거나, 대기업에 다니면 어땠을까. 혹여나 내가 전문직이었다면 그는 나를 절대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버린 것인지, 그냥 나는 앞서 있었고 그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때는 그저 서러웠다.     




출판사에 다니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어렸을 때 아빠가 세탁소를 하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사회에 나와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남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호회 같은 모임에 나가면 통성명을 할 때 남자들은 내 옆의 여자들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교사요? 좋은 직업이네요.” “아, 삼성이요? 바쁘시겠어요.” 나는 그 사이에서 점점 위축되었다. 내가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직업 때문인 것만 같았다. 만나는 남자마다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도 내가 가난한 데다가 직업이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편집자라는 직업에는 죄가 없다. 물론 출판사는 많은 남자들이 여자에게 바라는 ‘정년 보장’이 되지 않고, 십 년을 일해도 연봉 사천 넘을까 말까 하는 박봉에(적어도 내가 다니는 출판사는 그렇다), 야근이 있는 경우도 많다. 복지랄 게 없고 무엇보다도 요즘 누가 책을 보냐. 사양 산업이라는 말을 입사 때부터 들어 왔다. 선호 직업군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한다. 다만 나의 전 남자 친구들이 내 직업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나를 거절한 것은 아닐 테다. 다시 말하지만, 편집자라는 직업은 죄가 없다. 망할 내 자존감이 문제다. 편집자는 가난하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나는 처음에 이야기했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던 (굉장히 이성적인) 남자와 함께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연애 초반에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며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지금도 편집자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돈은 못 벌지만 더 이상의 자기 연민은 갖지 않는다. 내가 그때보다 지금 더 나의 일을 사랑하는 것일까. 

원래 글을 쓰면 칭찬을 받고 싶어서 동거인에게 쪼르르 보여 주는데, 이번 글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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