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든든한 이유
오랜만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제 휴일인데 뭐 했냐고 물었더니 이모랑 같이 점 보러 갔단다. 신점 같은 거 아니고 그냥 철학관이라고, 변명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그런다. 정말? 뭐래? 하는 내 목소리에서 엄청난 관심이 느껴졌는지 그때부터는 엄마가 신이 났다. 좋은 소리를 듣고 와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목소리가 밝았다. 우리 재물운 좋대? 내가 물으니 재물운이 있다는데, 남편이 날 떠받들어야(?) 재물운이 생긴단다. 앞으로도 열심히 돈 벌어야겠다. 혹시 집 옮기는 문서운 같은 건 없냐고 하니 다음 해 하반기를 노려보란다. 내 이야기를 한참이나 물은 다음에야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어떻대?”
“좋대. 올해는 그냥 평범하게 지나가고, 다음 해부터는 더 좋아진대. 점쟁이가 지금까지 고생했다고, 이제 힘든 건 다 지나갔다더라.” 그러면서 덧붙였다. “아빠랑 궁합이 좋지는 않은데, 나보고 잘 참았다고 하네.”
엄마가 그 말에 얼마나 위안을 받았을지가 느껴졌다. 복채가 얼마인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게 아깝지 않을 만큼의 위로였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 세탁소를 하는 아빠 수입으로는 가정 살림을 꾸릴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아프다는 등의 이유로 함부로 회사에 빠지는 일이 절대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성실함’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어디 가서 일을 못한다는 소리도 듣는 법이 없었다. 최근까지도 공장을 다녔는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육십의 나이에 정규직이 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일이 고되어서 먼저 그만두었는데도 설날에 공장에서는 튼실한 사과를 보냈다. 다시 오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생활력이 강해도 금고에 돈을 채우기 힘들었으니, 왜 점쟁이가 엄마 아빠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엄마 많이 힘들었지, 엄마가 잘 참았지. 나는 그렇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말하면, 아빠는 꽤 큰 돈을 ‘날렸다’. 우리 가족에게는 꽤 큰 돈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던 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엄마가 노후 자금으로, 혹은 자식 결혼 자금으로 따로 모아 놓았던 돈은 고스란히 그 비어 버린 돈을 갚는 데에 들어갔다. 그날 이후로, 가끔씩 안방에서 엄마가 멍하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던 것도 생각난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 번도 일을 빠진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일을 쉬는 법이 없다. 나는 엄마를 존경한다.
난 얼마 전에 새로 온 직장 수습 딱지를 뗐다. 10년 경력도 수습이 있냐고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그렇다. 베스트셀러 한번 내 본 적이 없는 편집자가 과연 새로운 직장에서 제대로 둥지를 틀 수 있을지 101가지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잘 끝났다. 지금 회사로 옮겨 첫 출근을 하던 날이 생각난다.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를 생각하면 든든하다. 육십 살에도 회사에서 엄마를 다시 부른다는데, 내가 그런 엄마 딸인데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내 몫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리고 엄마, 우리 엄마한테는 이제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이다. 몇십 년 살았는데 궁합이 찰떡같은 부부가 몇이나 되겠는가. 육십이면 대부분 자식도 장성하여 힘든 시기는 지났을 때지. 하지만 나는 점쟁이 말이 맞다고 확신한다. 엄마는 힘든 시간을 다 지나쳤고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