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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바다 Jul 10. 2021

나는 어떤 편집자가 될 것인가

분명 만들고 싶은 책이 달라져 있겠지?

2021. 7. 10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소설가 은희경을 나무위키에서 검색했다. 대학 다닐 때 그의 소설을 끼고 다녔다. 그의 외모까지 동경했다. 책날개에 인쇄된 옆모습이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다가올 이성과의 만남을 그려 볼 수밖에 없었던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은희경의 소설은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나에게 은희경의 소설은 ‘새것’이었다. 냉소와 위악이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그렇게 사랑했던 소설들의 줄거리가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무위키에 짤막하게 정리된 소설 속 문장들에도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말이 정말 사실이었다. 내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은 달라져 있었다.     




요즘 재테크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동그라미와 밑줄을 쳐 가며 정독한다. 부채와 자산을 구분하라, 현금 흐름을 만들어라, 당신은 변화해야 한다… 10년 전에 그렇게 끼고 읽었던 은희경 소설 속 명대사 한 줄도 기억나지 않지만, 1년 전까지도 관심 없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주장이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뒤 첫 번째로 기획한 책이 에세이고, 두 번째는 부동산 재테크 서적이다. 경제경영과 문학이라는 분야는 상극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만도 않다. 에세이가 밤이라면 부동산 서적은 낮이다. 낮에는 재테크를 공부하다가 밤에는 에세이를 펴 들면 딱이다. 둘 다 한 번도 제대로 만들어 보지 않은 분야라 쉽지 않지만,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차근차근 출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냉탕에서 너무 춥다 싶으면 온탕에서 머리를 데울 수 있다. “인문만 10년 했습니다.” 이런 외길 인생을 살아 보지 못해서 늘 얕은 편집 인생이지만, 그게 나임을 받아들였다.           




“몇 년 전의 나, 아니 불과 몇 달 전의 나를 생각해 봐. 달라져 있지 않아?” 

편집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음 해에 나올 부동산 책에 저자의 최근 변화까지도 담아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셨다. 그래도 투자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하고 난 얼버무렸는데, 자꾸 그 질문이 내 머릿속에 남아 떠돈다. 불과 몇 달 전의 내가 부동산 책을 만들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나는 청소년 인문 잡지로 출판계에 입문했는데, 어느 날 당시 팀장님이 “단행본 만들어 볼 생각은 없어?”라고 물었다. 나는 단칼에 답했다. “생각 없어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그리고 1년도 안 되어서 나는 그 회사를 떠나 어린이 만화를 2년 반 동안 만들었다. 그곳을 그만두고 나서 다시 처음 다니던 회사로 돌아와 어린이 단행본을 만들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나에게 단행본 만들어 볼 생각은 없냐고 물으셨던 그 팀장님이 나에게 이번엔 이렇게 물으셨다. “잡지 다시 해 볼 생각은 없어?” 나는 단칼에 답했다. “이제 잡지는 생각 없어요.”      




잡지를 만들 땐 한 달에 한 번 하는 마감 사이클이 나에게 딱 맞다고 생각했고, 여기저기 나돌아다니니까 답답하지 않다고 여겼다. 어린이 만화를 만들 땐 이제 어린이책을 평생 만들어야 하나 싶었다. 청소년 교양서를 만들면서 내 대학 시절 꿈이 선생님이었음을 떠올렸다. 딱 나에게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 큰 어른의 낮을 책임지는 재테크 서적과 자기 전의 시간을 책임질 에세이를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라는 직업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내 생각의 변화를 따라가며 기획하고(내 취향대로 만들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책을 편집해 볼 수 있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나라는 사람은 이십 대에는 사랑에 처참히 실패하고, 삽십 대 중반인 지금은 돈에 관심을 갖는다. 이제 아이를 낳게 되면 한 생명을 길러낸다는 일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전혀 관심 없었던 자녀교육서를 만들겠다고 저자 미팅을 하러 다닐 수도 있다.      




사람은 변한다. 그 말을 자꾸 되새겨 본다. 나는 어떤 편집자가 될 것인가. 묘하게 기대되는 일이다. 편집장님 말씀이 맞아요. 사람은 변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나는 당장 몇 달 후도 약속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아 보여요. 약속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기대하려고 해요. 나에게 다가올 변화들이 무엇이든, 잘 받아들여 보겠다고 다짐해 볼 따름입니다. 저는 한 분야의 ‘장인’이 될 운명은 아닌가 봐요. 출판계에 한 획 긋고 이름 남기고, 그렇게도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저는 책 만들기에 진심입니다. 몇 달 뒤에도 책을 만들고 있다면 그때 변화된 저의 모습이 반영된 기획을 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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