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더위가 한 풀 꺾인 9월 말,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옮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독서모임 엄마들과 함께 모였다. 책을 읽고 삶을 고백하는 순간들을 통해 진정한 북테라피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행복한 목요일 밤이었다.
- 독서모임을 준비하며
저자의 수용소 생활을 다룬 1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수감된 초반, 적응된 후, 석방된 후의 세 단계다. 각각 충격, 무감각, 환멸과 극복 등의 과정을 겪으며 극복하게 되는 과정을 마치 관찰자인 양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강제 수용소 네 곳에서 겪은 참혹한 시절을 다룬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저자가 던지는 메세지나 삶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책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저자가 보여준 삶의 모습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하는지를 고민해보고 각자의 삶에 적용해보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처했던 상황에 내가 놓인다면 과연 나는 어땠을 것인가를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 질문과 마음을 나누며
그래서 2부 로고테라피 부분보다 1부의 더 집중해 나눠보기로 했다.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각자 삶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지나가고 있는지, 극한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 겪은 아름다운 순간들은 무엇인지, 부당한 사회적 시선과 권력에 저항했던 경험들은 무엇이었는지, 현실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내 원동력은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찾고, 삶이 내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질문들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제 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된다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9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p70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p108
당신으로부터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 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p108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 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다. p125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은 사실 아주아주 느슨한 공동체다. 서로 개인적인 연락도 하지 않고 따로 만나지도 않는다. 공유된 연락처도 없고 공지용 오픈카톡방만 있을 뿐이다. 2주에 한 번씩 같은 책을 읽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서로의 질문에 답을 하며 책이 자기에게 일으키는 변화를 경험한다.
그런데 그 변화를 같이 겪어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이번 모임에서도 그랬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과 그 시련을 통과하는 과정에 대해 진솔한 각자의 고백이 이어졌다. 각자 경험하는 시련들을 떠올리는 것 뿐만 아니라 저자처럼 삶을 긍정하게 되는 순간들을 곱씹어보게 됐고, 책에서 건진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찾은 메세지를 내 삶에 적용해보며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보는 충만한 두 시간을 보냈다.
-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
각자의 감상을 나누며 책모임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한 분이 ‘올해 내가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이 모임에 들어온 거예요’라고 말해주셨다. 그 얘기를 들은 또 한 분은 ‘모임에서 읽은 책은 평생 기억할 것 같아요. 혼자 읽을 때와 달리 같이 읽으면서 그 의미가 완전 다르게 다가왔어요.’ 라고 말해주셨다. 그 날 저녁, 또다른 분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지만 우리에게는 [행복의 수용소]가 되었다고 메세지를 남겨주셨다. 행복이라는 말에 다 담을 수 없는 뿌듯함과 보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 마음에 중독되어 다음 모임을 준비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