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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상 Apr 24. 2023

우리는 얼마나 뜨거워져야 할까.

<15.>

<15. 우리는 얼마나 뜨거워져야 할까.>


커피는 생두 생산 국가와 지역, 가공방식과 커피 품종에 따라 로스팅 포인트가 달라진다. 심지어 그날의 온도와 습도, 날씨에도 로스팅 방식이 달라진다.


미묘한 1-2도의 온도 차이, 열을 전달하는 방식은 확실히 로스터마다 차이를 가지게 된다. 얼마나 더 뜨거워져야 할까, 얼마나 덜 뜨거워져야 할까. 매 순간 선택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약간의 차이는 로스터마다의 개성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각자의 개성으로 축적한 데이터의 차이가 그 브랜드의 맛이 된다.

로스팅의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생두를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것과 흐름을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로스팅을 시작했을 때 느꼈던 막연함에 비해 이제는 처음 보는 커피를 만났을 때에도 어느 정도 커피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짐작은 열이면 아홉 정도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많은 커피를 만나며 쌓인 경험 덕분일 것이다.


나를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꽤 강한 불로 태우며 매사에 무리다 싶을 정도로 임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았을 때 가장 후회하고, 열심히 행동하고 하루가 끝날 때 즈음에는 완전히 불타 지칠 만큼 강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일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태도가 버릇이 되어 일하고 행동하고 있다.


당연하게 스스로를 열심히 담금질하던 행동을 주변에도 그래야 한다며 일반화했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며 이해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건 초보 로스터들이 하는 아주 기초적인 실수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커피를 같은 로스팅포인트로 로스팅할 수 없다. 모두의 개성은 다르다. 어떤 친구는 나와 같은 강한 불에서 최적의 맛을 구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약하게 오래 로스팅했을 때 깊고 화려하게 발현하고 강한 자극에 쉽게 타버리는 커피도 있다.


카페를 운영한 시간이 쌓이고 함께 일하는 바리스타 직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더 깊게 한다. 모두가 나와 같은 지향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고, 그런 행동들이 정말 진심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기준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물론 '모두가 옳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분명하게 잘못된 행동양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마치 반드시 골라야 하는 작은 돌조각이나 주변까지 맛을 잃게 만드는 썩은 생두 같은 사람이다. 이걸 골라내는 행위를 커피에서는 핸드패킹이라고 한다. 사람도 똑같다. 그리고 카페뿐 아니라 집단에서 그 핸드패킹을 하는 건 가슴 아프지만 필수적인 정말 중요한 집단 유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로스터가 되고 싶다. 좋은 로스터는 각 커피의 등급이나 품종에 관계없이 로스팅해야 할 상황에서 최선을 발견하고 그 포인트를 잡아내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말이 결국 좋은 사장으로서 행동해야 할 점과 닿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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