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8. 블랜딩치국평천하 (3)>
만들어진 블랜딩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그 블랜딩의 맛을 구현할 수 있는 바리스타다. 로스터가 아무리 맛을 잘 구상하고 생각해 블랜딩을 만들어도 그 커피를 구현하는 바리스타가 로스터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최적의 커피가 되지 못한다.
바리스타의 의견을 무시한 로스터의 블랜딩은 결국 가치가 떨어지는 블랜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로스터가 사장인 로스터리 카페의 구조와 시스템에서 결과적으로 로스터의 결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절대 바리스타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이다. 카페에서 파트타이머부터 직원을 거쳐 사장이 된 나에게는 더욱 간단치 않은 부분이다. 블랜딩에서 커피의 어울림처럼 사장과 직원의 어울림, 바리스타와 로스터의 소통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물론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모두 혼자 진행하는 로스터 겸 바리스타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라면 이와 같은 고민은 덜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은 카페의 단명을 재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는 현실에서 결국 이들의 소통과 조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과감한 생략과 투입이다. 커피는 바뀐다. 같은 농장에서 수확한 생두도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심지어 하반기와 상반기 컨테이너에 따라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생긴다. 매번 관성적으로 블랜딩에 넣어오던 커피가 어느 순간 품질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과감하게 그 커피를 생략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리고 단가 상승의 부담이 있더라도 꼭 필요한 커피라면 치열한 고민과 함께 투입을 결정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두 곳의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함께 일하는 바리스타도 두 카페를 합쳐 열여덟 명이 되었다.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의 어울림이 마치 커피의 블랜딩처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쌓은 추억이 많은 바리스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이건 결국 카페의 운영과 삼라만상의 책임자인 사장의 결정일 수밖에 없다. 불안하고 막연하지만 어쩌면 블랜딩 전체를 망치지 않기 위한 결단이 될 수 있다.
아무 결정을 하지 않는 사장님과 일한 경험이 있다. 결국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원성이 쌓이고 썩어서 집단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을 목격했다. 블랜딩의 변질이다. 아무 행위를 하지 않는 건 변화하지 않는 게 아니라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이다. 로스터에게 맛이 변한 커피를 생략해야 하는 결정은 필수 불가결이다.
결국 카페의 모든 요소들이 그 카페의 블랜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 하나 이유 없이 섞여있는 존재는 없어야 한다. 존재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로스터는 그 블랜딩을 잘 조합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
좋은 블랜딩을 만드는 로스터가, 그리고 좋은 조화로움을 예민하게 생각하는 사장이 되어야겠다. 갈 길이 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