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23. 오래 견뎌온 이들에 대한 존경>
오금동커피를 오픈하고 육 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이제는 두 곳의 카페 매장과 로스팅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이전보다 많은 바리스타들과 함께 카페를 꾸려나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견디는 삶’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무 살 초반에 취직했던 방송작가라는 직업과 영화 마케터의 일을 그만두면서 많은 좌절이 있었다. 내가 쓴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며 내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갈 줄 알았던 내 스스로가 결국 그 일들을 ‘견뎌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꽤 긴 기간 나를 무겁게 했다.
카페를 오픈하고 내가 잘하는 일을 알게 되었고 그때 스스로 갉아먹던 마음이 많이 해소되었다. 억지로 견뎌내며 버텼더라면 지금의 오금동커피도 없었을 거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그때의 자책감을 느끼던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 견뎌냄‘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온전하게 오래 무언가를 지켜낸 이들의 인내와 충돌, 그리고 계속되는 부딪힘 속에서도 견뎌낸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누군가에게는 너무 짧다고 느껴질,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정도의 내 사업의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벌써 수많은 현실의 시련이 나를 스쳐갔다.
믿었던 사람으로 인해 겪는 무너짐은 물론이고, 그저 완전한 타인이 던진 돌멩이에도 꽤 오래 환부를 문지르며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업 그 자체를 흔들거나 불안과 걱정에 잠들지 못해 새벽이 되도록 뒤척여야 하는 시간들도 많았다.
문득 그럴 때 나보다 먼저 무언가를 견뎌낸 선배님들을 보게 된다.
오금동커피에 우유를 납품해 주시는 사장님은 내가 카페를 열기 훨씬 전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도 우유를 제공하셨던 분이다. 우유사장님은 언제나 밝고 행복하게 웃어주신다. 그 태도가 단 하루도 변하지 않고 항상 유지된다. 이건 글자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이다. 어느 순간에도 화는커녕 지쳐있는 기색도 잘 드러내지 않으시며 항상 무거운 우유박스를 옮겨주신다. 나는 이 선배님께 늘 웃고 일관된 모습이 ’ 신뢰‘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믿음을 준다는 사실을 배웠다.
처음 오금동에 카페를 열었을 때 내게 손을 내밀어주시고 함께 커피모임을 주도해 주신 이웃의 카페 사장님도 계신다. 같은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그렇게 먼저 나에게 어떤 제안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벌써 십 년이 더 되는 시간 동안 본인의 매장은 물론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시는 이 ’ 선배님‘을 통해 넓게 보는 시야와 사람을 담는 그릇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근처 수선집 사장님도 계신다. 내 아버지보다도 연세가 있으신 사장님이 매일 같은 의자에 앉으셔서 같은 일을 반복하신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시고 늘 성실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시는 사장님은 이미 동네에서 실력이 좋으시기로 유명하시다. 그분의 인생의 절반도 겨우 살았을만한 나에게도 언제나 깍듯하게 존대와 배려를 해주신다. 그 모든 일들이 과연 그저 쉽게 나오는 일이었을까. 이 선배님은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얼마나 길고 많은 견뎌냄의 시간을 지나오셨을까.
나를 배우고 성장하게 하는 많은 ’ 선배님들‘이 있다. 지금 그들의 모습이 그저 아무렇게나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역사가 쌓여갈수록 그들의 역사가 더욱 깊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우주의 수 없는 충돌처럼 앞으로도 끝없는 깨짐과 무너짐이 예고 없이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도 그 견뎌냄의 시간들을 현명하게 건너다보면 그 시간들이 쌓여 나도 누군가에게 ’ 선배‘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