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교실
#무성교실 #무라타사야카 #읽는고양이 #윈디캣
급하게 무언가 읽어야 할 걸 찾아야 할 순간이 있다. 나한테는 캠핑 가는 날이다. 캠핑 브랜드 평가와 캠핑장 운영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모닥불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정당화하기엔 책만 한 것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이다. 일종의 기피제 같은 걸 수도 있겠다. 본질을 외면하는 이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기피제. INFJ다. 허튼일과 말에 에너지 쏟을 생각없다.
이 책은 그 순간 서점에서 골라잡은 일종의 잡지 같은 역할의 책이다. 필요와 역할이 절실했던 그날 이 책을 끌어안고 혼자 텐트에 처박혀 있는 동안 행복했았다. 흔히들 생각하는 캠핑의 여유로움은 내가 가는 캠핑장에서는 찾을 수 없다. 거긴 그냥 불피워놓은 시끄러운 호프집이다. 오픈형 키즈룸에 본인들도 깨닫지 못하는 허영, 관계에 대한 강요, 대조 만족 등이 있는 내겐 지옥 비슷한 곳이다. 변질한 캠핑문화 욕은 그만하고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꽤 기이한 책이다. 일본 문학 특유의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괴상한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뭔가 병맛인 첫 번째 이야기를 지나 잔혹한 첫사랑 지우기 두 번째 이야기, 성별을 숨겨야 하는 학교 이야기, 그리고 인상 깊은 마음의 유행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참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음 역시 유행에 따라간다는 요상한 세계관에 분노가 사라졌을 때의 이야기인데 분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에서 필요한지를 알게 해주었다. 흔히들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선 중에 분노를 무시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을 읽는다면 뭔가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내가 느낀 분노의 큰 필요는 무리를 짓기 즉 정치질이 아닐까 한다.
나쁘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는 공동의 적에게 분노를 느낄 때 더욱 나은은 공동체를 만들수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라 세상 분노의 목적은 내 마음을 알아주길 원하거나 나와 같은 생각하는 이들이 분노로 함께 해주길 원할 때가 대부분이다. 분노를 통해 치고 받는 투표로 민주주의가 탄생, 완성하고 다당체제의 아슬아슬한 듯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거지 같다. 분노가 공동체의 원천일 수 있다니
내가 변절된 캠핑 문화에 느끼는 분노 역시 이런 의미가 아닐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정치에 관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다. 관심은 가지되 걱정은 하지 마라. 그대의 통제 불능한 분노의 운전대를 남(정치인들)에게 주지 말고 잔잔한 분노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살아가는 게 어떨까? 마치 각성한 헐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