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n Jun 23. 2021

다른 사람의 지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이야기는 필자가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며 느끼는 감정들, 맞닥뜨리는 상황들 그리고 그 상황들에서 느끼는 점들을 담담하게 적어갈 이야기들입니다. 철도공사와 관련한 보안사항은 다루지 않을 것이며 문제의 소지가 있을 시에 수정 및 삭제될 수 있습니다.



때는 2020년 6월,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한 날 아침이다.

함께 가평을 가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 B와 왕십리역에서 ITX 청춘열차를 타기 위해 환승하려 한다.


그 날은 꽤 덥기도 했지만, 열차 내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썩 여행의 설렘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분당선의 종점에서 내리려는 찰나, 나와 내 친구 B는 옆자리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한다.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그렇게 싸지도 않은, 꽤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두툼한 지갑이었다.


왕십리역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 10분 전이었지만, 나와 내 친구는 주저없이 이 지갑의 주인을 찾아줘야겠노라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 오지랖으로 약속시간을 충분히 늦추게 되었다.


고객지원실이 어딘지 몰라 아무 개찰구로 가서 비상게이트에 말했다.

"분실한 지갑을 찾았는데 어디로 갖다드려야 할까요?"


나 : "분실한 지갑을 찾았는데 어디로 갖다드려야 할까요?"
직원 : (무뚝뚝하게) "건너편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신 뒤 오른쪽으로 오세요"
나 : "아.. 네 알겠습니다."


나와 친구 B는 헤매면서 우여곡절 끝에 분실물을 보관하는 고객지원실에 도착했다.

나 : (문을 열면서) "저 지하철에서 분실된 지갑을..."
사회복무요원 : "지갑을 잃어버리셨다구요?"
나 : "아뇨아뇨 저희가 분실된 걸 찾았어요"
사회복무요원 : "아 네 여기에 두고 가세요"
나와 친구B : (??)


어떠한 절차도 없이 너무나 빠르게 끝나버렸다. 


아뿔싸.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바란것인가? 뭐 지갑을 찾아줬으니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거나, 아니면 지갑을 찾아준 주인에게 내 전화번호를 건네줘서 고맙단 감사인사라도 받으려고 했는가? 왜 감사인사를 받으려고 하는가. 나는 그냥 고객이었고 단지 운 좋게 누군가의 지갑을 발견하였으며 그냥 그것을 건네줄 뿐인 것이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말하면 친구보다도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나버린 이 절차에 실망했고, 돌아오는 길에 "아 그 지갑에 편지라도 적어놓을 걸..." 이라며 유치한 후회를 드러냈다. (왜그랬을까..)


물론 해당 역 사회복무요원의 너무나 딱딱한 대처가 실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내가 1년 뒤에 비슷한 곳에 앉아서 고객 응대를 하게 될 줄 전혀 몰랐다.


그리고 말한 것 처럼 1년 뒤, 그리고 지금 나는 이곳에 앉아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를 외치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고, 역시 수 많은 분실물을 접한다. 다시 말해서 내 하루 일과에 있어서 분실물은 1/100 정도를 차지할까 말까 이다. 


수 많은 고객들에게 지쳤으며 우리를 도구로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슬픔을 느낄때 간혹 누군가가 내가 있는 부스의 창문을 두들긴다.


톡톡. 이거 승차장에서 주웠는데요..


내게 지갑을 건넨다.


그럴 때 마다 나는 1년 전의 나를 떠올리며, 비록 내가 지갑의 주인은 아니지만, 비록 내가 분실물을 100개 찾았다 해서 포상을 얻는 것도 아니지만, 1초도 걸리지 않는 "아 네 감사합니다^^" 를 외친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5분, 10분을 소비했을 그들에게, 다시 선행을 이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물론 분실물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사회복무요원이 혼자 처리하려 하지 말자. 카드 습득 신고센터에 전화 하면 도리어 분실한 사람이 우리 전화번호를 받고 '언제 가겠다. 아 아니 언제 가겠다' 라고 하면서 그 지갑을 몇 시간 동안 신경 쓰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근무 교대까지 겹친다면..

그러니 얌전히 역무실에 바로 맡기는 것을 추천한다..


덧붙이자면, 그 때 왕십리역 사회복무요원들, 정말 힘들것이다. 분당선의 종착역(거의 종착역이라 보면 된다)으로, 취객이나 환승하는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역무실에서의 함께 근무.. 등등, 어우, 그 곳이라면 정말 힘들겠지?



작가의 이전글 사회복무요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