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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 Jul 06. 2021

스스로 일어나는 힘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언제 행복해지냐 라고 물어봤을 때, 누구는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서 답이 모호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여러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영화주인공 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예를 들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던지, 꾸뻬씨의 행복여행 처럼 말이다.


그 때 어떤 결론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 기인했는지는 알 것 같다. 결국 혼자 있어야 한다라는 우울감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혼자서 사는걸 더럽게 못한다. 특히나 중고등학교 때는 가족들과 대화는 많이 하지도 않았으며 친구들과도 지금처럼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마다하지 않고 대화했으며 계속해서 사람을 찾아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고 연애를 했으며, 연애를 하며 느낀 점은 나는 스스로 행복해질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행복해질줄 모른다는건 너무 ‘나 불쌍해요’ 를 홍보하는 것 같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힘들때 스스로 회복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방법이라면 ‘여러 사람들과 깊이 대화나누기’ 정도가 있겠지만, 이 조차도 사람을 못 만나면 말짱도루묵 아닌가. 


연애를 하면서 바라본 내 모습에서 나는 첫 번째로 상대방에게 제대로 기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 어떤 기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에게 의존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도 힘들 때는 힘들다고 잘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는 그러면서도 내 곁에 있는 상대방이 내 상황을 알고 행복해지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친구로써 사귄다고 해서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재롱을 떨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는 먼저 상대가 알아주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먼저 말하지도 않으면서 알아주길 바란다니? 물론 모순적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얻는 괴리감들은 내가 꽤 결함이 있는 사람이란걸 알게 해주었고,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할 거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지금은 열심히 알려고 노력중이다. 얼마전 꿈을 꾸었는데, 우연히 만났다는 설정에서 만난 누군가가 나를 아주 편하게 해줬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매우 편안했다. 그래서 잠에서 깨고 나서도 다시 자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를 찾으면서 행복해지려고 할 수는 없다 !

그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며, 나도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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