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한 달이 조금 넘게 남은 시간.
호주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한 달이 조금 넘게 남은 시간.
실질적으로 호주 땅을 밟기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나 있었다.
외국에 간다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게 비자다. 우리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유학박람회에 갔을 때 비자에 대해서도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장 받을 수 있는 비자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가 아직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박람회에서 상담을 받으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는데, 요즘 남자 비자 나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군대에 다녀온 남자의 경우, 몇 달까지도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추측하기로는 계엄령이 한번 터지고 난 이후로 그런 것 같다고 상담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릴 적 항암 치료를 받았었는데, 그 병력으로 군 면제를 받았었다. 나는 군대에 다녀온 적이 없으니 그래도 조금 나을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한편으로 얼른 비자를 빨리 신청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람회를 마치고 부랴부랴 비자 신청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군 복무 이력이 없던 덕분인지, 비자는 늦지 않게 나왔다.
집은 일단 임시 숙소 개념으로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어학원을 등록하는 경우, 숙소도 같이 등록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둘이 함께 묶을 수 있는 숙소를 구하고 싶었다.
안전하게 호주에 도착하기 전에 집을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미리 집을 구한다는 게 더 위험해 보였다. 결국 우리가 지내야 할 집인데, 직접 가보지도 않고 계약을 한다는 건..
그래서 우리는 일단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먼저 2주 치를 예약하고 추후에 2주 치를 따로 예약했다. 임시 숙소 개념인 것이다. 진짜 숙소를 구하기까진 얼마가 걸릴 진 모르겠지만, 4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걱정이 없던 건 아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경우 집 계약이 어렵다는 글이 인터넷에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호주에서 1년만 살고 갈게 아니라는 점 그리고 월세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었다. 이도 저도 안되면, 웃돈을 주고라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편에서도 얘기했듯 우리는 퇴사 전 건강검진을 통해 우리 몸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했다. 내 경우 위에 작은 용종이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치료가 요구되진 않는다는 결과를 받아 이상 없다 생각했다. 아내의 경우, 안압이 높아 정밀 진료를 받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받았다. 안과를 내원했고, 치료를 요구할 수준은 아닌데 정기적으로 관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과를 받았다. 1년에 한 번씩 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매년 검진받는 걸 약속 어렵다 생각해, 2년에 한 번 검사받겠다고 했다. 아무튼 당장은 둘 다 큰 이상은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외국에선 치과 치료가 비싸다 하여 둘 다 시간을 내 치과 검진과 스케일링도 받았다. 사실 내 치아 건강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충치도 있고, 또 잘 때 이를 갈아서 그런지 잇몸이 조금 파여 있었다. 치과에선 성인 충치는 그렇게 쉽게 악화되지 않아 당장 치료할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시린 이는 메우는 게 좋다는 진단을 받았다. 예상치 않은 몇십만 원 지출 생각에 마음이 아팠지만, 호주에서 치료받는 것보단 훨씬 저렴할 거라 생각해 치료를 받았다.
산전검사는 미루고 미루다 보니 출국 전 주까지 밀리게 되었다. 둘 다 비교적 젊은 나이다 보니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바쁘기도 하고 또 이때쯤 되니 얼른 호주에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 그냥 호주에서 자리 잡고 나중에 검사를 받을까 생각도 했다. 어차피 아이를 갖는 것도 빨라도 2년 정도는 후에 갖게 될 것 같으니 그때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검사를 받는다 하더라도 2년 동안 생식 능력이 현저하게 안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일단 한국에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검사는 다 받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침 출국 전 마지막 주에는 아무 일정을 잡아둔 게 없으니, 이때 검사를 받기로 했다.
결국 우리 둘 다 자유의 몸이 되었던 시점. 출국으로부터 1달 전.
사실상 모든 준비는 끝났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기간 2가지에 집중했다.
회화 실력 쌓기 그리고 소중한 이들과 인사하기
굵직굵직한 것들은 모두 준비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은 일들은 있었다. 하지만 회사를 나오니 그래도 여유 시간이 꽤나 많아졌다.
주어진 한 달이라도 우리는 준비를 해야 했다. 호주에 잘 자리 잡기 위해서.
결국 우리에게 가장 큰 장벽은 언어일 거라 생각했고, 남은 시간 우리는 회화에 조금 더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우린 학원을 하나 더 등록했다.
퇴사하기 전에도 주 4회 수업을 듣고 있었다.
나는 수업을 듣고 출근하기 위해 아침 6시 수업을 들었고,
아내는 바로 다음 수업은 7시 수업을 들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학원에서 아침 인사를 했다.
퇴사 후에는 기존에 다니던 학원에 수업을 더 듣기보단 새로운 학원을 하나 더 다니는 걸로 결정했다.
기존 선생님도 정말 좋았지만, 최대한 다양한 원어민의 발음을 듣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아침 수업, 점심 수업으로 나름의 시간표를 짰다.
추가로 등록한 학원에서는 아내와 나 둘이 한 번에 등록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에겐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을 어필해서 프로모션 혜택을 좀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총 3분의 원어민 수업을 듣게 되었다.
평일은 영어에 집중했다면, 주말에는 주로 가족 그리고 지인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식사도 하고 여행도 하고.. 여행에선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기도 했다.
함께 동호인 운동을 하던 멤버들과 갔던 여행에선 케이크와 함께 영상 편지를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떠난 2박 3일 여행에선 내 얼굴이 그려진 케이크를 받았다. 선물에 이들과 긴 시간 떨어져 있을 거라는 게 실감이 되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보니 어느덧 출국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이제 남은 건 다치지 않고, 빠뜨린 짐이 없나 다시 점검하고, 가족들 얼굴을 한번 더 보는 것. 그것뿐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