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여정이 시작됐던 속초로 다시 떠났다.
출국 석 달 전 아내는 PTE 점수 만들기에 성공해 냈다.
이제 필요한 서류들만 잘 제출하기만 하면, 호주 간호사 면허증은 시간문제였다.
우린 이 순간을 기념하고자 다시 속초로 떠났다.
원래 우리는 결혼기념일 여행을 다녀오려 했다.
사실 우리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지를 정해놨던 건 아니고, 막연하게 여행 계획만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날 새벽에 시험 결과를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의 여정이 시작됐던 속초 여행 다시 떠나기로 했다.
아직 3월이라 날씨는 사나웠다. 하지만 우리 마음만큼은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동안 아내는 혼자 시험을 준비하며 절망적인 순간들도 많았다.
해본 적 없던 영어 공부를 홀로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정말 힘들었던 건 평가 방식과 문제 형식이 바뀌었을 때였다. 아내는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혼자 마음을 달래고 다잡았다. 블로그에 속풀이 글을 써 내려갔던 것이었다. 나만 보기로 적어두었기에 그 내용을 읽어 보진 못했다. 아내가 글을 썼다고 알려주긴 했지만, 글 내용은 나중에 때가 되면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다.
아내는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여행 첫날 저녁, 식당에서 나에게 글을 보여줬다. 글 속에는 욕도 있고, 푸념도 있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아내가 힘들 때일수록 왜 호주에 가고 싶은지를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았던 부분이었다.
아내의 목표는 분명했다. 아내는 얼른 호주에 정착하고 간호 일을 시작해야 아이를 만날 수 있다 생각했다. 결국 아이를 만나기 위해 계속해서 홀로 싸워왔던 것이었다. 글을 읽는 나를 보며, 언젠가 아이가 크면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바꾸려 했는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 마음 한편에 혹시 내가 호주로 가자는 얘기를 꺼내 고생하는 건 아닌지, 호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데 아내에게 강요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강인했고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본인의 노력을 결과로 증명해 냈다. 그날 밤 아내의 눈이 참 반짝였다.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했던 다른 준비들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건강이다.
당시 내가 재직했던 회사에서는 회사 복지 차원에서 배우자를 포함하여 전용 건강검진 시설에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올해가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해였다. 덕분에 아내와 함께 여러 검사들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둘 다 건강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어학원도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얻은 건 시험 점수인 만큼, 실질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또 다른 훈련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회화 학원을 다니며 준비했지만, 현지에서도 훈련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래서 도착해서 아내는 어학원을 다니고, 나는 일단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취업시장에 부딪혀 보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어학원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곳에 상담도 받아보고, 박람회도 다녀왔다.
박람회는 유학 박람회였는데, 어학원 관련해서 상담도 받아보고 또 비자 관련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세션도 진행되어 다녀왔다. 이렇게 손품, 발품을 팔아가며 어학원 한 곳을 정했고 계약금도 송금하여 호주에 도착하면 다닐 어학원 입학 준비도 마쳤다.
다니던 회사에는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어디 붙었냐는 물음에 아내가 호주 간호사가 됐다고 답했다. 회사도 딱히 잡지는 않았다. 남들은 이직을 얘기할 때 난 이민을 얘기했으니, 회사도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그렇게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도 회사를 나왔다.
아내와 나, 둘 다 백수가 되었다.
타국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