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E 여정

아내는 두 달에 한번, 한 달에 한번, 마지막은 일주일 한번 시험을 봤다

by writingsean

호주행을 결심하고 그로부터 석 달 뒤

아내는 다니던 병원을 나왔다.


아내의 퇴사와 함께 우리는 새롭게 목표를 세웠다.

아내의 목표는 해가 바뀌기 전에 호주 간호사 면허증 전환에 필요한 PTE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나의 목표는 추후 비자 신청 시 필요한 최소 IELTS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2024년 10월: 첫 PTE 시험

퇴사하고 일주일이 채 안되어 아내는 첫 PTE 시험을 보았다.

호주행을 결심한 이후부턴 그래도 나름 PTE 공부를 공부를 해왔다.

하지만 첫 시험은 합격보단 실력 점검 차원에서 시험에 도전헀다. 그래서 기대가 크진 않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기대가 아주 없진 않았다.

하지만 점수는 꽤나 객관적이었다.

그렇게 아내는 첫 고배를 마셨다.


첫 PTE 이후 우리는 새로운 일정을 잡았다.

바로 출국 일정이다.

워킹홀리데이로 라도 나간다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일단 항공권부터 예약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디데이를 내년 여름으로 못 박았다.




2024년 11월: 두 번째 PTE 시험

이후 아내는 꾸준히 공부를 이어갔다.

주말을 카페에서 보내는 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토요일 하루에도 적게는 2번, 많게는 3번 카페를 갔다.

오전 오후 나눠 가거나, 저녁 식사 후에도 에너지가 있다면 밤늦게 하는 카페를 가는 식이었다.

아내는 PTE를 공부했고 나는 IELTS를 공부했다.

두 달 후 아내는 2번째 시험을 도전했다.

11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점수는 많이 올랐지만 목표 점수에 도달하진 못했다.




2025년 1월: 회화 공부 시작 그리고 세 번째 PTE 시험

항공권을 예매하며 아내와 얘기했던 게 있다.

바로 새해가 되면, 회화 공부를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회화 능력을 보는 시험이기에 사실 시험공부가 곧 회화 공부이긴 했으나,

그래도 외국인과 실제로 대화하는 능력은 또 다른 세계일 거라 생각했다.

우리의 디데이는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시험 결과가 어찌 됐든 새해에는 회화 공부를 시작하자 얘기했었다.


사실 나는 12월부터 이미 전화영어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PTE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아내는 약속대로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아내의 첫 회화 수업은 화상영어였다.

선생님은 필리핀에 계신 미국계 남자 영어 선생님이었다.

외국인과의 첫 대화였다.


1대 1 대화로 진행됐는데, 아내는 부담을 느꼈다.

첫 번째 수업을 듣고 다음날이 되자 아내의 스트레스는 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외국인과의 1대 1 대화는 아직 무리였던 것이다.

6개월치 수강권을 예약했지만 이를 취소했다.

다행히 수업 일수만큼만 차감하고 환불을 받았다.

그리곤 아내는 오프라인 학원을 등록했다.

영어로 수업이 진행됐지만, 다대일 형식이고 한국인 선생님이라 아내는 나름 즐겁게 수업에 적응했다.


1월 마지막 주말에 아내는 세 번째 PTE 시험을 봤다.

이번에는 꽤나 기대가 컸다.

65점이 나와야 전환이 가능한데, 두 번째 시험에서 60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목표 점수를 넘진 못했다.

그래도 이번에도 성과는 있었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총 4 분야에서 모두 65점을 넘어야 하는데, 이번 시험에는 65점을 넘은 분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체 점수 또한 3점 올랐다.

한번 더 하면 목표 점수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바로 다음 달 시험을 또다시 등록했다.




2025년 2월: 네 번째 PTE 시험, IETLS 시험

아내는 4번째 시험을 봤다.

기대가 컸지만 이번에도 아내는 고배를 마셨다.

전반적인 점수는 목표 점수를 넘어섰지만, 한 파트가 문제였다. 리스닝에서 61점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점수에 아내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PTE에만 전념하고 있는데도 목표 점수가 나오지 않으니 부담감도 컸다.


나는 첫 번째 IETLS 시험을 봤다.

다행히도 나는 목표로 했던 최소 점수를 받았다.

호주 이민은 당시 기준 점수제로 진행되고 있는데, 나는 자격조건에 해당하는 Band를 받았다.

추가 점수를 받으려면 더 높은 Band를 받아야 했지만 일단 난 만족했다. 일단 최저조건은 받은 셈이라 생각했다.




2025년 3월: 2번의 PTE 시험. 그리고 마침내

3월에는 시험을 두 번 봤다.

아내는 오기가 생겼나 보다.

PTE는 기본적으로 AI가 채점해서 결과가 결과가 빨리 나왔다.

시험을 본 날부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내는 몇 번이고 새벽에 일어나 결과를 확인했다.


3월에 두 번째 시험을 본 날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결과는 새벽 4시쯤 나온 것 같다.

옆자리에서 자고 있던 아내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나를 깨워 얘기했다.

"여보 됐어! 나 PTE 됐어!"


잠결에 나는 처음에 무슨 소리인가 했다.

아내가 한번 더 얘기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우리는 신이 나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지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제 남은 건 열심히 회화를 공부하다 출국하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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