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259일 전, 사건 발생 254일 전이었다.
처음 퇴사 얘기를 꺼냈을 땐 솔직히 좀 회의적이었다.
우리 목표는 호주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 후 출국하는 것이 아닌 일단 호주로 출국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마저도 사실 계획일 뿐이었다. 무르려면 무를 수 있는 계획.
아내가 혹여 호주행 계획을 저버릴까 걱정되기도 했다.
아내의 동료 덕에, 그리고 호주 간호사에 대한 방대한 인터넷 자료들 덕분에 우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확신과 실행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아내는 영어와 담을 쌓고 지내왔다.
그래도 워킹홀리데이로 일단 출국하자는 결심을 한 이후부턴 단어공부를 꽤 열심히 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단어 공부를 이어온 지 한 달 좀 넘게 지났을 때 퇴사 생각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단어 공부 좀 했다고 퇴사 후 PTE 시험에 전념할 수 있을까? 그것도 독학으로.
솔직히 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아내도 본인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내는 계속 나에게 의견을 구했다. 퇴사를 하는 게 맞는 선택인지에 대해.
그때 당시 우리 부부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28살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땅을 밟는 거였다. 아내가 호주 간호사라는 자격으로 호주에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영어 점수에 대해 급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며 수료증도 받고 자격증도 취득해 본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일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퇴사하고 아내의 변심으로 인해 영어와도 멀어지게 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다 못해 비행기표도 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안 가면 그만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일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 휴일이었다.
호주행을 결심한 이후 아내는 쉬는 날이어도 종종 혼자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곤 했다.
이날도 아내는 카페를 갔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내는 퇴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했다고 알려줬다.
아내가 정말로 호주를 가고 싶은지에 대해 그리고 퇴사를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결정에 대해 혼자 장단점을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었다.
고민한 결과 퇴사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글로 정리한 내용을 보여줬는데, 얼마나 신중하게 내린 결정인지 느낄 수 있었다.
아내가 본인의 삶에 그토록 깊이 고민한 결과가 퇴사라 하니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런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는 거에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내는 병원에 퇴사하겠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리곤 두 달 후 아내 약 5년 간 몸담았던 병원을 나왔다.
출국 259일 전,
사건 발생 254일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