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에서 계획으로

작심삼일이 아니었다. 이번은 점점 더 타오르는 연탄불과도 같았다.

by writingsean

2024년 여름, 속초에서 돌아오는 길은 곧 호주행 준비를 시작하는 길이 되었다.

차에서의 이야기가 둘 사이의 해프닝으로도 끝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린 작게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영어 단어만 외워보자는 거였다.

이런 얘기가 사실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작심삼일 기록

이전에도 삶을 바꾸려는 노력들은 있었다.

아내는 나와 만나기 전에는 간호직 공무원에 도전했었다.

처음으로 취업한 병원에서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고 공무원이 되려 한동안 독서실에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다른 병원의 3교대 간호사로 취직했다.


결혼 후에도 커리어 전환을 위한 시도는 있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보험 청구 업무도 자주 겸하고 있었는데, 어떤 병원에서는 이 업무만 보는 곳도 있다고 했다. 보험심사 간호사라고 했던가.


우리 부부는 자녀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3교대 간호사의 업무 환경은 아이를 갖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험심사 간호사는 상근직에 서류 작업만 하기에 나아 보였다.

아내는 여러 채용 공고에서 우대사항으로 보험심사관리사라는 자격증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여러 권의 책과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다.

하지만 책은 며칠 못 가 한쪽 구석을 차지하게 되었고, 인터넷 강의 수강권 또한 친구에게 양도하게 되었다.




유유상종 남편

나는 귀가 얇은 편이다.

주변 지인들의 권유에 잘 혹하는 스타일이다.

하루는 증권 쪽 급여가 좋다고, 너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형이 있었다.

그러면서 FCB라는 학회가 있는데 유명한 학회라고 추천해 줬다.

부트캠프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바로 등록하고 결제했다.

강의를 듣고, 매일 시황을 기록하고, 삼양식품의 가치를 추정해 보는 활동을 했다.

프로그램은 3달가량 진행됐다. 열심히 했고 수료증도 받았다.

(주어진 과업을 일정 수준 이상 수행한 학생들에게만 주는 수료증이었다)


그러곤 한 3군데 지원했을까?

모두 서류 탈락했고, 증권은 내가 가려는 길이 아니라 생각하고 접었다.


해가 바뀌고, 하루는 다른 형에게 클라우드에 대해 영업(?)을 당했따.

정확히는 그냥 나 혼자 또 '저 직업이 더 좋아 보이다'라고 생각했다.

전망도 좋고 페이도 좋다고 했고 그래서 저 직업이 더 좋아 보였다.


형 말로는 클라우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선 자격증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AWS의 Solutions Architect - Associate라는 자격증이었다.


이것도 한 석 달 공부했다.

클라우드와 네트워크에 대한 책 그리고 블로그를 찾아가며 기본 지식을 익혔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기출문제집을 찾아가며 준비했다.

다행히도 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다.


그러곤 마찬가지로 한 3군데 지원했을까?

모두 서류 탈락했고, 역시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처럼 우린 새로운 도전에 대해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경험들 덕에 둘 다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었다는 점.

그래서 영어 단어책을 샀을 때도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엔 달랐다.

이전에는 타오르던 열정이 책을 구매함과 동시에 빠르게 식어버렸다면,

이번에는 연탄불처럼 더 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아내의 꾸준함이 이전과 달랐다.

해외에 나가려는 건 아내 혼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교대 업무 특성상 교대를 할 때는 근무 중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다음 근무자에게 상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누게 된다고 한다.

아내가 근무했던 병원에는 아내 나이 또래의 간호사분들도 계셨다.


하루는 한분과 호주 간호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놀랍게도 이분은 미국 간호사 면허를 갖고 계셨다.

미국 간호사에 도전하기 전에 이미 여러 국가의 간호사에 대해 알아보셨고, 그래서 호주 간호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다. 동료 선생님은 호주 간호사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간호사 1명당 맡게 되는 환자수가 몇 명인지, 병동에 간호사는 몇 명씩 있는지..

좋은 얘기 뿐이었다.

숫자만 듣더라도 한국보다 근무 조건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거기다 급여는 더 높았다.


아내는 이 대화로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아내는 이 이야기를 나에게 전했다.

나 또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얘기했다.

"우리 그냥 나가자. 어차피 가서 직접 부딪혀야 언어도 빨리 늘어"


이날 우리는 모호했던 출국 계획을 좀 더 구체화시켰다.

호주 간호사 면허와 상관없이 내년에 워킹홀리데이로 나가는 걸로.


그리고 얼마 후 아내는 영어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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